
“우리 아들 목숨값이 X값만 못합니까?”
지난 7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항소부 법정에서 한 어머니가 절규했다. 어머니의 항의를 들은 합의부 판사 세 명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휴정도 하지 않고 다음 재판을 내버려 둔 채 황급히 일어나 법정을 빠져나갔다. 위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고, 법정에 뛰어든 것도 아니며, 그저 울분을 토했을 뿐인데 그랬다. 스스로도 부끄러운 판결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이날 법원은 2016년 군의 부실 진료와 치료 지연으로 자기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고 사망한 고 홍정기 일병 유가족의 국가배상 사건 항소심 판결을 선고했다. 반복된 증상 호소에도 피부병약, 두통약만 처방하던 군의관, 훈련을 이유로 민간병원 내원을 미룬 간부들, 뒤늦게 찾은 민간병원 의사가 혈액암 의심 소견을 내고 즉시 큰 병원에 가라 했지만 무시했던 지휘관 사이에서 한 달간 방치돼 있다가 병원 가는 버스에서 의식을 잃은 홍 일병은 숨을 거둔 뒤에야 급성 백혈병에 따른 뇌출혈 합병증 발병 상태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평균적인 20대 남성 백혈병 환자의 경과로 볼 때, 진료만 적시에 이뤄졌다면 이렇게 허망하게 병원 한 번 못 가보고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군인의 죽음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어느 정도로 인정할 것인지 많은 이가 궁금해했다. 대한민국의 대답은 ‘X값’이었다. 군인을 파리 목숨 취급하는 나라는 과연 징집할 자격이 있는가.
재판부는 홍 일병 죽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놓고도 부모에게 각 800만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소송비용은 유가족이 80%, 정부가 20% 부담하라는 결정도 덧붙였다. 억만금을 주어도 돌아올 수 없는 자식이라지만, 소송비용을 제하고 나면 ‘배상금’ 딱지를 붙이기에도 민망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올해 1월 국가배상법이 개정됐다. 그전까지 군인, 군무원, 경찰은 국가의 잘못으로 사망해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었다. 이를 ‘이중 배상 금지’라 한다. 국가의 과실 책임과는 무관하게 법령이 정한 보상금만 받을 수 있었다. 유신 시대의 잔재다. 법 개정은 군 사망 사건 유가족들이 오랜 세월을 싸워온 결과였고, 특히 홍 일병 국가배상 사건이 1심에서 이중 배상 금지를 이유로 유가족 패소로 판결 난 것이 이슈가 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때문에 항소심 판결에도 관심이 모였던 터였다. 군인의 죽음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어느 정도로 인정할 것인지 많은 이가 궁금해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대답은 말 그대로 ‘X값’이었다. 국가배상법 시행령상 자식 잃은 부모에게 지급해야 할 사망 위자료의 기준선인 1000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건강하게 키워 군대 보냈더니 영정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며 아픈 줄도 몰라서, 병원 한 번 데려가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힘없고 백없어 군대 보낸 것이 후회된다던 홍 일병 어머니는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를 듣기 위해 10년을 꼬박 거리에서 싸웠다. 그렇게 받아낸 사과 같지 않은 사과 앞에 홍 일병 어머니는 지난 8월 18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시작했다. 항소심 판결을 내린 판사들을 탄핵하든지, 아니면 징병제를 포기하라는 취지다. 홍정기 일병은 훈련소 수첩에 군대를 ‘대한민국같이 좋은 나라에서 태어난 운을 갚는 곳’이라 적었다. 그런 군인을 파리 목숨 취급하는 나라엔 과연 징집할 자격이 있는가. 기업 회장님이 벌금을 면피하기 위한 노역엔 1억원의 일당을 쳐주면서 군대 보낸 아들이 잃어버린 수십 년엔 800만원을 매기는 허망한 나라에 우리는 무슨 운을 갚아야 하는가.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