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심장’ ‘9·11 트라우마’ 뉴욕서 무슬림 사회주의자 시장은 어떻게 탄생했나

2025-11-05

‘무슬림’과 ‘사회주의자’가 여전히 불온한 존재로 인식되는 미국에서 ‘무슬림 사회주의자’ 시장이 탄생했다. 그것도 다름 아닌 뉴욕에서다. 2001년 9·11 테러의 발생지인 뉴욕은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공포증)가 가장 극심한 곳이었다. ‘자본주의의 심장’으로 불리는 뉴욕과 ‘사회주의자’는 공존할 수 없는 조합처럼 여겨졌다. 그런 뉴욕에서 자신을 민주사회주의자로 규정하는 시아파 무슬림인 조란 맘다니 민주당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된 것이다.

갑작스런 이변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 뒤에는 뉴욕의 화려한 겉모습에 가려진 긴 역사적 맥락이 있다. 미국에 도착하는 이민자들의 첫 관문이었던 뉴욕은 1900년대 초 미국 사회주의 운동의 허브와도 같은 곳이었다. 브롱스·로어이스트사이드·브루클린 등에선 유대인과 유럽계 저임금 이민 노동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주의 단체들이 조직됐고, 1920년대엔 뉴욕시 의회까지 진출했다.

비록 1940~50년대 매카시즘으로 ‘사회주의’라는 말 자체가 정치적 금기어가 되고,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같은 부동산 거부의 산실이 됐지만, 여전히 기저에는 이 같은 흐름이 이어져 왔다. 뉴욕은 1970년대 학생운동과 반전운동의 중심지였고, 2011년 ‘월가 점령 시위’의 진앙지였다. 사회주의 운동에 몸담은 전력이 있는 빌 드블라지오를 2014년 시장으로 선출하고, 2018년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SA) 소속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를 연방 하원에 진출시킨 것도 뉴욕이었다.

그래서인지 경향신문이 만난 맘다니 지지자들은 “‘자본주의의 심장’에서 사회주의자 시장이 탄생했다는 소식에 전 세계가 놀라고 있다”고 기자가 말할 때마다,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라는 표정으로 2~3초간 말을 멈췄다가 “뉴욕은 노동자의 도시”라고 답하곤 했다. 결국 ‘사회주의자’ 맘다니의 당선은 ‘자본의 수도’로 불렸던 도시의 정체성을 다시 정립하고, ‘사회주의’를 정치적 금기어에서 해제하겠다는 뉴욕 노동자들의 선언인 셈이다.

또 다른 한 축에는 더 이상 이슬라모포비아의 희생양이길 거부한 뉴욕의 무슬림들이 있다. 무슬림 뉴욕 시장의 탄생 과정은 9·11 테러 이후 혐오 폭력의 대상이 된 무슬림들이 이에 맞서기 위해 정치세력화에 나선 과정이기도 하다. 파키스탄 이민자 출신인 홀리는 경향신문에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은 9·11 테러 이후 한순간에 바뀌었다. 나는 무슬림 혐오 때문에 정치적으로 각성했다”고 말했다. 2013년 뉴욕의 무슬림들은 ‘뉴욕무슬림민주클럽’을 결성해 직접 시의원 후보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맘다니 역시 선거운동 자원봉사로 시작해 2018~2019년 무슬림민주클럽 이사회에서 활동하다가 2020년 뉴욕주 의원으로 당선됐다.

현재 뉴욕의 무슬림 인구는 유대인 인구와 거의 비슷한 100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다른 어떤 집단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무슬림민주클럽에 따르면 지난 6월 맘다니가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던 뉴욕시장 예비선거에서 무슬림과 남아시아계 유권자의 투표율은 2021년 뉴욕시장 선거 대비 60%나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무슬림이란 정체성은 맘다니 정치 여정의 일부일 뿐이다. 그가 유권자층을 확대하고 노동계급 연합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것은 특정 집단이 아니라 뉴욕 시민 모두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인 임대료와 물가를 공략한 덕분이다. 2017년에 이어 2024년 또 다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패배한 민주당 내에선 노동자의 생계와 경제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으나, 이를 실천에 옮긴 것은 맘다니가 유일했다. 맘다니가 지난 예비선거 때 승리를 거둔 선거구의 상당수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이 높은 지역들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주류 지도부는 맘다니의 급진적 이미지 때문에 중도층 지지자가 이탈할까 봐 오하려 그와 거리 두기에 나섰다. 결국 ‘트럼프의 부상’과 ‘민주당의 실패’가 맘다니를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게 만든 셈이다. 맘다니 열풍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사회주의 운동도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뉴욕 DSA는 맘다니가 승리한 지난 6월 예비선거 이후 1만1000명이 새로 등록해 전체 회원 수가 두 배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맘다니가 앞으로 맞닥뜨릴 현실은 험난하다. ‘좌파와의 전쟁’을 선포한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은 맘다니를 ‘악마화’하고, 이를 민주당을 공격하는 전략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선거 막판까지 맘다니 지지 선언조차 망설였던 민주당 지도부는 맘다니와 선 긋기를 시도할 수도 있다. 또 맘다니 당선을 막기 위해 선거 개입 발언까지 불사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시에 대한 연방자금 지원 중단을 실행에 옮겨 맘다니의 공약 실현을 좌초시키려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맘다니와 그의 지지자들은 이에 맞설 각오를 이미 하고 있는 듯 하다. 당선 축하파티가 열린 브루클린의 극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던 니콜라스는 경향신문에 “절대 당신의 의제에서 물러서지 말라고 맘다니에게 말해주고 싶다”면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그가 추진하려는 정책을 위해 함께 뛸 것이다. 그의 지지자로서 나의 진짜 역할은 내일 아침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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