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회계약, ‘연결되지 않을 권리’의 역설

2025-05-14

일과 쉼의 경계가 사라진 시대, 우리는 하루에도 종종 예측할 수 없는 알림음을 듣는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퇴근길 버스 안에서도, 심지어 가족과 보내는 저녁 식사 시간도 예외는 아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일터의 경계를 무너뜨렸고 근로 시간과 휴식 시간을 가르는 선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는 이러한 시대에 등장한 절박한 요구다. 단순히 “일을 하지 않을 자유”가 아니라, “인간답게 쉴 권리”,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권리”에 가깝다. 특히 한국처럼 장시간 노동이 구조화된 사회에서는 이 권리의 의미가 더욱 절실하다. 과로와 스트레스 그리고 관계의 단절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결국 사회 전체의 신뢰를 저해하고 공동체를 침식시킨다.

법적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 헌법 제17조는 “사생활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근로 시간 외에 개인의 삶이 방해받지 않을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권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다르다. 사장님, 상사, 고객에게서 오는 업무 연락은 ‘강제’가 아니라는 포장을 통해 사실상 근로를 강요한다. 이것은 근로계약의 명시적 범위를 넘어선 침해다. 노동경제학적으로 볼 때,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단순한 복지 이슈를 넘어선다. 휴식 없는 노동은 생산성을 장기적으로 갉아먹고, 이직률을 높이며, 결국 기업과 사회에 더 큰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다. 장시간 노동은 당장 수익을 올리는 것 같지만, 건강 악화와 사회적 비용 증가라는 ‘숨은 비용’을 초래한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와 마주친다. 근로자가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회는 신뢰를 파괴한다. ‘쉼 없는 일터’는 인간관계의 질을 악화시키고, 시민 간 연대와 협력의 기반인 ‘사회적 자본’ 형성을 방해하여 결국 시민사회의 건강성을 해하게 된다.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에 복지선진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프랑스는 2017년, 50인 이상 기업에 퇴근 후 이메일 금지, 주말 업무지시 제한 등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조치를 의무화했고 독일은 법률 제정 대신, 대기업이 자율적으로 ‘퇴근 후 서버 차단’과 같은 정책을 도입해 온전한 쉼을 보장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지만,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다. 즉, “근로자가 쉬는 것은 개인적 호사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인식이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단순한 개인의 권리가 아닌 모두를 위한 공공재다. 건강한 쉼은 스트레스성 질환을 줄이고, 의료비용과 산업재해를 감소시킨다. 좋은 쉼은 가족 간 유대, 지역사회 신뢰, 기업 내 조직문화 개선으로 이어진다. 제대로 쉬게 해주는 것은 단지 ‘착한 일’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살아남기 위한 ‘합리적 선택’이다. 하버드대 교수인 로버트 퍼트남(Robert Putnam)이 강조한 것처럼, 사회적 자본은 신뢰와 협력의 네트워크 속에서 자라난다. 그리고 이 신뢰는 쉼과 존중이 보장된 사회에서만 꽃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 쉼 없는 사람은 꿈꿀 수 없고, 꿈꾸지 않는 사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연결되기를 요구받는 사회는 결국 서로를 소진케 만드는 사회가 될 뿐이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지키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웃의 삶을 존중하고,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지키는 일로 귀결될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의 통찰처럼, 진정한 발전은 끊임없는 연결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제 우리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끊김’이 아닌 ‘존중’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사회계약’임을 직시하고 제도적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최낙관 독일 쾰른대 사회학박사/예원예술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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