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만이다. 예전에 도야마 알펜루트를 다녀온 후 올해 다시 갈 기회가 생겼다. 일본 중부지방에 속하는 도야마 알펜루트는 일본의 알프스라 불릴 정도로 유명하며 내리는 눈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올해 5월초, 쌓인 눈의 평균 높이는 16m였다. 덕분에 이곳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장관이 펼쳐진다. 여기서는 눈을 소재로 삼아 4월부터 6월까지 유키노오타니(雪の大谷)라는 눈 축제가 열린다. 이 기간에는 설벽으로 불리는 엄청난 장관을 보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 관광객이 몰린다.
이 축제가 열리는 다테야마의 무로도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버스 정류장이다. 무려 높이가 2,450m이다. 이 높은 곳까지 버스가 운행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올해는 4월 개장 직후라 눈 상태도 비교적 좋았다. 다만 내가 갔던 첫날에는 날씨 때문에 폐쇄 상태였다.
나는 2,400m에 있는 라이초 산장에 묵기로 했다. 예전 기억이 강렬해 이번엔 꼭 이곳에 머물고 싶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산장에서 별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날씨가 도와준다면 별을 담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했지만 아쉽게도 당일 날씨는 별로 좋지 않았다.

아침부터 나고야에서 조금씩 비가 내리더니 무로도에 도착했을 때는 눈발로 변해 있었다. 무로도 가는 도중에는 2012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미다가하라(弥陀ヶ原, 1,930m)가 있다. 우리나라에 강원도 용늪이 유명하다면 일본의 고원습지로는 이곳이 대표적이다. 여름철에는 귀한 야생화를 볼 수 있다고 하지만 내가 갔을 때 미다가하라는 사방이 눈으로 덮여 있었다.
신록이 푸르른 5월에 맞는 눈은 나를 살짝 흥분에 빠지게 만들었다. 산장으로 가는 동안에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열심히 찍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이초(ライチョウ)라 불리는 뇌조(雷鳥)이다. 라이초는 내가 묵기로 한 산장의 이름이기도 하다.
푸르른 5월
꿈결처럼 눈길을 간다
눈발에 문득 길은 사라지고
라이초 한 마리
생의 경계에서 목을 놓아 운다
해발 2400m
사방에 눈밖에 없는 곳에서
피어난 생명이다
거센 눈발에
산으로 가는 길은 막혀도
새는 홀로 길을 낸다
- 라이초, 산의 경계를 허물다

뇌조는 이 지역을 비롯해서 일본의 2,000m급 고산지대에서만 서식하는 희귀한 새이며 일본의 천연기념물이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들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뇌조를 보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자세히 보니 눈이 내리고 날이 추워서인지 사람이 근처까지 다가가도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덕분에 산장으로 가는 길에 운 좋게 뇌조 몇 마리를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그날은 눈발이 거세 별은커녕 달조차 보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밤 12시쯤 온천을 하다가 창밖을 본 순간 달이 선명한 것이 아닌가. 곧장 밖으로 뛰쳐나가자 온 하늘에 별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하늘이 빽빽할 정도였다. 눈앞에서 그렇게 장엄한 모습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별 사진을 찍는 동안 새벽 2시 무렵부터 트레킹을 즐기려는 이들이 하나둘씩 산장에서 빠져나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설벽 입장이 가능해져서 둘러볼 수 있었다. 무로도 터미널 근처에는 뇌조를 비롯하여 알펜루트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식물과 조류 등을 전시해 둔 다테야마(立山)자연보호센터가 있다. 덕분에 잘 모르는 이방인의 입장에서도 뇌조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뇌조는 일본 화폐에도 등장할 정도로 국가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라이초를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보호하려는 의식이 강하다고 한다.

다테야마 자연보호센터를 둘러보며 문득 우리나라 생각이 났다. 물론 우리나라도 휴양림 등지에도 학습관이나 전시관 형태로 운영하는 곳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다테야마 자연보호센터의 해설과 전시가 좀 더 체계적이고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우리도 국립공원이나 휴양림에서 자연과 생명의 세계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장창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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