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서기 근무 노사합의’ 적용 못 받고···23세 베트남 노동자, 폭염에 사망

2025-07-09

경북 구미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사망한 베트남 노동자는 ‘혹서기 노사합의’를 적용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계는 건설업체들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이주노동자 채용을 늘리면서 기본적인 안전보건교육조차 하지 않아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9일 취재를 종합하면, 베트남 노동자 A씨(23)가 사망한 경북 구미 산동읍의 B아파트 건설 현장은 31개동 2740세대 아파트를 짓는 대형 건설 현장이다. 대광에이엠씨가 시행사, 대광건영이 시공사다. 이 현장에는 500여명의 건설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7일 A씨가 온열질환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되면서 고용노동부는 이 현장에 전면작업중지 조치를 했다. A씨는 이날 화장실에 간 후 돌아오지 않았고 동료들이 오후 4시쯤 지하 1층에서 쓰러져 있는 A씨를 발견했다.

지난 6월 민주노총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와 사용자 측인 대구경북철콘협의회는 이달부터 다음 달 23일까지 ‘혹서기 노사합의’를 통해 노동시간을 1시간 단축하고 고온 시 현장 협의로 작업 중지가 가능하도록 했다. 오전 7시 출근을 오전 6시로 1시간 당기고 점심시간을 30분 단축해 오후 2시~2시30분에는 작업을 마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양측은 다음 달 23일 이후에도 기상 여건상 혹서기 기간을 확대할 수 있다는 조항도 넣었다.

B아파트 현장은 ‘혹서기 노사합의’를 맺지 않은 곳이지만 최근 기온이 크게 오르자 뒤늦게 노조 조합원을 중심으로 사측과 ‘혹서기 노사합의’ 사항을 이행하기로 했고 조출과 단축근무가 시행됐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이를 적용받지 못했다. 심재선 민주노총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조직부장은 “업체가 목수팀장에게 A씨에 대한 노동 조건을 자율로 맡겼고 평소처럼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주노동자는 시키는 대로 일하니까 단축근무 등을 적용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 구미 산동 지역 낮 최고기온은 38도로 구조 당시 A씨 온도를 측정하니 40.2도였다. A씨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알려졌다.

A씨는 1차 협력업체인 건설사 C사와 채용 계약을 맺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등록되지 않은 업체에 하도급을 주거나 발주자의 서면 승낙 없이 재하도급을 주는 건 불법이다. 심 부장은 “건설 현장에는 브로커들이 이주노동자 여러 명을 팀으로 꾸려 다시 도급을 받는 일이 빈번하다”며 “업체는 이주노동자를 투입해 인건비를 줄일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건설노조는 A씨가 적절한 안전교육을 받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모든 건설 현장 노동자는 기초안전보건교육을 이수한 후 이수증을 제출해야 취업할 수 있다. 공병열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총괄사업단장은 “해당 현장에서 기본적인 안전보건교육조차 받지 않은 미등록 노동자 100여명이 적발됐지만, 이후 건설사는 아무 조치 없이 이들을 현장에 내몰았다”고 말했다. 노조는 이주노동자들이 취업을 위해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을 위조해서 들어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지난 2월 대전경찰청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을 위조하고 판매한 조직을 적발해 3명을 검거했다.

A씨는 이 현장에 처음 출근한 날 사망했다. 공 단장은 “더위에 대비한 영양 보충, 안전 수칙도 모른 채 현장에 투입돼 사망한 것”이라며 “사고가 아닌 구조적 살인”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노동부에서 2시간 일하면 20분 휴식을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보냈지만 사업주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중소 현장은 더 심각하다. 정부가 사업주에게 좀더 강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