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남태평양 팔라우-상어에 붙어 호가호위, 빨판상어

2025-08-19

호랑이에게 잡힌 여우가 임기응변을 발휘한다. “나는 천제의 명을 받은 귀한 몸이다. 네가 나를 해치게 되면 천제의 명을 어기는 것이니 큰 벌을 받을 짓이다. 천제의 명을 다른 동물들은 다 알고 있는데 너는 어찌 모른단 말이냐. 만약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내 뒤를 따라와 봐라.”

호랑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우를 앞세우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만나는 짐승마다 꼬리를 내리고 달아나기 바쁜 게 아닌가. 사실 짐승들을 달아나게 한 것은 여우 뒤를 따라가던 자신 때문이지만, 호랑이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이는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호가호위(狐假虎威)에 관한 이야기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권위를 빌려 위세를 부리는 행위를 말한다.

바닷속에는 상어나 바다거북 등 대형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이 있다. 2020년 남태평양 팔라우 해역에서 만난 빨판상어도 그중 하나다. 상어의 배와 꼬리지느러미 앞쪽에 붙은 채 상어에게 몸을 맡긴 모습이 신기하게 보였다. 이들은 이름만 상어지 연골어류에 속하는 상어와는 전혀 다른 어종이다. 포식자인 상어 몸에 붙어 다니는 게 유별나 빨판상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빨판상어 머리 위에는 등지느러미가 변형된 타원형 빨판이 있다. 여기에는 20~28개의 흡반이 있는데 빨판상어는 이를 가지고 자유자재로 몸을 붙이고 떼어낼 수 있다. 이들이 대형 바다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여러모로 이득이 있다. 대형 바다 동물들이 사냥할 때 떨어뜨리는 부스러기를 받아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먼 거리를 힘 안 들이고 다닐 수 있다. 상어처럼 위세 등등한 수중 포식자와 함께 물속을 휘젓고 다니며 혼비백산 흩어지는 다른 바다 동물들을 내려다보는 호가호위의 허세 또한 누릴 만하다.

<박수현 수중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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