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중국 비지볶음 설화채와 한중일 콩비지 열전

2025-11-06

예전 비지는 서민음식의 대명사였다. 하기야 일반적으로 콩을 갈아 콩물을 빼서 두부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이 비지이니 좋은 식재료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형편없는 재료라도 잘만 활용하면 훌륭한 요리가 될 수 있기에 한중일 삼국이 모두 비지 활용에 열심이었다.

먼저 우리나라다. 조선 후기인 18세기를 살았던 실학자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비지 예찬론을 펼쳤다. 콩은 오곡 중의 하나로 매우 좋은 작물이지만 너무나 흔해서 오히려 귀하게 여기지를 않는다며 맷돌에 갈아 핵심으로는 두부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만으로 국을 끓여도 구수한 맛이 먹음직스럽다는 것이다. 이런 비지국에 돼지고기와 신김치를 더해서 발달한 것이 지금 우리가 먹는 콩비지 찌개다.

일본에도 우리처럼 비지찌개가 있다. 우리는 비지찌개 끓일 때 주로 돼지고기와 신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끓이는 반면 일본은 돼지고기 대신에 생선 머리를 넣고 끓인다고 한다. 또 김치 대신 무와 유부 등을 넣는다니까 같은 비지찌개라도 우리와는 맛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일본은 비지찌개보다는 우노하나(卯の花)라는 콩비지 볶음을 많이 먹는다. 우노하나는 우노라는 나무의 꽃이라는 뜻인데 초여름에 피는 작고 하얀 꽃이 마치 비지를 뭉쳐 놓은 것 같아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가 비지찌개에서 어머니 손맛을 느끼듯 일본인들은 우노하나에서 향수를 느낀다고 한다.

우노하나라는 콩비지볶음은 물기를 쏙 뺀 콩비지에 유부하고 버섯, 당근 등의 재료를 넣고 양념과 함께 볶아서 먹는 음식이다. 고소하면서 채소가 많이 들어가 씹히는 맛이 있을 뿐만 아니라 비지의 구수한 맛이 색다르다. 우노하나라는 비지요리는 중국에서 유래한 음식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18세기 후반의 일본 두부요리서인 『두부백진(豆腐百珍)』에도 보이니 나름 역사가 꽤 깊다.

중국은 두부를 만들어 퍼트린 나라인 만큼 비지를 활용한 요리도 진작부터 발달했다. 일단 17세기 중반으로 추정되는 명말청초에 나온 『식소록(識小錄)』에도 비지 요리가 보인다. 두부를 만들고 난 부산물인 가루로도 음식을 만들 수 있는데 이름을 설화채(雪花菜)라고 한다고 했다. 여기에 기름과 소금과 생강을 더해 요리하면 맛이 좋은데 그 맛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17세기에 이미 비지요리가 널리 퍼졌음을 알 수 있다.

비지볶음요리, 설화채를 이름으로 풀어보면 눈꽃으로 만든 요리라는 뜻이다. 하얀 콩비지 알갱이가 몽글몽글 뭉쳐 있는 것이 마치 눈꽃처럼 보였는지 작명이 무척이나 시적이다.

청나라 때는 비지요리가 상당히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문헌에 많은 종류의 비지요리가 보인다. 예컨대 19세기인 1861년에 발행된 요리책이자 의학서인 『수식거음식보』에도 설화채가 실려 있다. 생비지를 볶아서 먹는 요리라고 나오는데 현재는 생비지를 원료로 표고버섯과 갓을 비롯한 각종 채소와 함께 중국 된장 등을 넣고 볶거나 끓인 콩비지탕으로 진화했다.

설화채를 소개한 수식거음식보는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다. 몸에 좋은(養生) 음식을 선별해 수록해 놓았다. 그러니 두부를 만들고 난 부산물인 비지가 몸에 좋다는 것인데 약식동원이라고 음식과 약은 뿌리가 같다는 것이니 모든 음식이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니 비지도 예외가 아니다.

『본초습유(本草拾遺)』라는 청나라 때 의학서에는 비지가 염증과 몸의 붓기를 빼는데 좋다고 나온다. 본초습유는 명나라 의학서인 본초강목에 나오지 않는 민간요법을 주로 수록한 책이니 한 마디로 정통 의학이라기보다는 민간요법이라는 말이다. 다시말해 청나라 때 민간에서는 비지를 단순히 두부 만들고 난 찌꺼기 부산물이 아니라 몸에 좋은 영양가 높은 음식으로 취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기야 청나라는 중국에서 두부가 다양한 형태로 분화돼 퍼졌던 시기였다. 이를테면 우리가 아는 전통 두부 이외에도 말린 두부 삭힌 취두부(臭豆腐), 튀긴 두부인 유부에 말랑말랑한 순두부, 훈데두부에 두부껍질만 말린 두부피, 중국인들이 아침식사로 꽈배기와 함께 먹는 두부콩물, 그리고 설화채라고 하는 콩비지 볶음 등등 두부 종류만 수십 가지로 분화되어 퍼졌다. 그러니 설화채 역시 두부를 만들고 난 부산물이 아닌 콩물을 빼지 않은 영양가 높은 콩비지였기에 각종 의학서에 몸에 좋은 음식으로 수록됐을 것이다.

우리를 비롯한 한중일 삼국에서 비지는 흔히 그 나라에서만 먹는 서민음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두부를 먹는 나라에서는 모두 비지가 있고 세 나라에서 모두 이 비지를 이용해 고유의 맛있는 요리로 발전시켰다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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