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오쿠보역의 기적

2025-05-26

지난달 22일 아침 8시가 안 된 시각, 일본 도쿄 신주쿠 신오쿠보역. 올해 31살의 정우조씨는 여느 출근길과 다름없이 개찰구를 지나 계단을 올랐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전철을 기다렸다. 이윽고 도착한 전철.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한참이 지나도 좀처럼 닫히지 않는 지하철 문. 무슨 일일까. 웅성거리는 승객들 틈으로 지하철 옆 칸이 보였다. 사람들이 60대는 되어 보이는 덩치 큰 일본인 남성을 끌고 나오고 있었다. 곧이어 미동이 없는 남성을 바닥에 눕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쓰러졌어요! 숨을 안 쉬어요!”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였다. 절로 다리가 움직였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남자 옆에 주저앉아 말을 걸었다. 초점 없는 눈을 보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가 남성 옆에 주저앉아 있는 사이 누군가 다가와 남자의 다리를 높이 들었고, 또 다른 누군가가 달려와 심폐 소생술을 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의식 없는 남성의 기도를 확보해주는 것밖엔 없었다. “괜찮아요? 제 목소리 들려요?” 얼마나 외쳤을까. 남성의 눈가가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여분이 지났을까. 구급대원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남성이 들것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본 뒤, 그는 다시 전철에 올랐다.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출근길 내내 쓰러졌던 남자가 무사히 병원에 갔을까 궁금했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신주쿠 소방서였다. 감사장을 건네고 싶다는 거였다. “왜 주는 거죠? 한 일이 없는데요.” 쓰러진 남성의 기도를 확보해주고 말을 걸어준 것 외엔 없는데 상이라니 부끄러웠지만 신주쿠소방서는 한사코 받아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19일 도착한 신주쿠 소방서. 입구엔 커다란 글씨로 정우조란 이름 석 자가 쓰여있었다. 소방서장실로 들어가는 길, 일하던 소방관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는 그렇게 도쿄 소방총감이 주는 감사장을 받았다. 난생처음의 일이었다. 지난 21일 신주쿠에서 만난 그는 쑥스러워했다. “쓰러진 사람을 도와주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바쁜 출근길, 선뜻 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란 쉽지 않은 일이이라고 하자 환한 얼굴로 웃는다. “쓰러지신 분이 저희 아버지 같은 생각이 들어서요.” 상장보다 더 기쁜 일이 있다고도 했다. 바로 그 남성이 병원에서 호전 중이라는 얘기였다. 24년 전 의인 이수현씨가 일본인을 구한 신오쿠보역. 작은 기적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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