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허철호씨(64)는 가족과 함께 집을 나섰다. 일요일마다 갖는 외식 자리였다. 예약한 식당으로 허씨의 동생 허정씨(58)가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과묵한 동생은 그날 유독 말이 많았다. ‘정이가 오늘따라 기분이 좋네.’ 허씨는 늘 일에 치여 사는 동생의 들뜬 얼굴이 보기 좋았다. 다음엔 동생을 데리고 산에라도 놀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뒤 아침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어머니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정이가 죽었다.”

4남매 중 맏이인 허씨에게 셋째 동생 허정씨는 늘 걱정거리였다고 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직한 동생은 토요일에도 쉬지 않고 출근했다. 원체 말수가 없어 힘들다는 얘기 한번 한 적이 없었다.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는 일을 한다고만 했다. “그게 그렇게 위험한 일인지 몰랐다”고 허씨는 말했다.
동생은 지난달 18일 오후 8시쯤 서울 신림역 인근 기계식 주차장 아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작업 중인 것을 몰랐던 주민이 차량을 호출하자 딛고 있던 발판이 갑자기 올라갔고 그대로 8m 아래로 추락했다. 추락한 채 5시간 동안 방치됐다. 작업복 주머니에선 다 해진 지갑과 바스러진 과자 한 개가 나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허씨는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을 가진 그의 눈에 사고 현장은 ‘살인사건 현장’이나 다름없었다. 동생이 주차장 내부에 있는데도 기계는 작동 가능한 상태였다. 작동을 주의하라는 표지판도, 안전관리자도 없었다. 회사는 사고가 난 지 5시간이 지난 후에야 동생을 찾았다. 허씨는 한 개의 원칙이라도 지켰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찾았으면 살릴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다. 허씨는 “이 사건은 산업재해가 아니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말했다.

동생의 주민등록증 사진은 영정 사진이 됐다. 그를 고용한 회사인 엠케이시티와 원청회사인 SK쉴더스는 빈소 입구 앞에 화환을 두고 사진을 찍어갔다. 허씨는 “사람이 죽었는데 인증사진을 찍나” 싶어 화가 났다고 했다. 장례를 마친 후 허씨는 ‘이런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지난 24일 서울 구로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허씨는 100쪽이 넘는 두꺼운 서류파일 하나를 꺼내 보였다. 동생의 장례를 치른 후 그가 모은 산업재해 관련 자료들이었다. 허씨가 손가락으로 붉게 표시한 법령을 가리켰다. ‘기계식 주차장치 운반기 안에 사람이 있는 경우 이를 감지해 작동하지 않게 하는 장치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차장법 시행규칙(16조5)이었다. 뒤이어 가리킨 2020년 국토교통부 보도자료엔 ‘기계식 주차장 작업자가 추락할 경우 생명을 보호할 수 있도록 안전망을 하단층에 설치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자료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가 공부하며 붙인 메모지가 달랑거렸다.

허씨는 동생의 죽음이 ‘반복된 죽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법과 제도가 없는 게 아니에요. 법이 있는 데도 있는지를 모르고 규정대로 지키질 않잖아요. 이런 사고까지 이어지게 된 과정 구석구석을 봐야죠. 안 그러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또 일어날 수 있거든요.” 또 한 명의 유가족이 전문가가 돼 있었다.
오는 6월5일이면 동생의 49재다. 어머니는 허씨를 볼 때마다 운다. 산 자식의 얼굴이 죽은 자식의 얼굴과 닮아서 운다. 허씨는 동생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계획 중이다. 모르는 사이 또 누군가 죽을까 무서워서 그는 동생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