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마다 판세 예측 실패" 명성 자자했던 '여연'의 추락 이유 [위기의 보수]

2025-08-19

지난해 4월 실시된 22대 총선에서 수도권 지역에 출마한 국민의힘 A 의원은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경험을 했다. 격전지로 분류됐지만 선거 판세 분석을 총괄한 여의도연구원은 자체 여론조사 결과조차 건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A 의원은 19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상대 후보는 동네 어디서 유세해야 효과적일지까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눈을 감고 상대와 싸우는 느낌이었다”며 “매일 언론 분석 보도를 보고, 사설 여론조사에 의존해 겨우 선거를 치렀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은 한때 유능함의 상징이었지만 명성이 추락한 지 오래다. 당권을 둘러싼 계파 싸움으로 잦은 수장 교체→정책 연속성 부재→역량 하락 및 인재 영입 실패 등 ‘악순환의 삼중고’가 경쟁력 하락의 원인이라는 지적(전직 여의도연구원장)이 나온다.

여연은 최근 주요 선거마다 판세 예측에 실패하며 신뢰도에 금이 갔다. 2020년 열린 21대 총선이 대표적이다. 당시 여연은 4·15 총선 일주일 전까지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과반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고 분석했지만, 당시 미래통합당 계열이 얻은 의석은 101석에 그쳤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계열은 과반을 훌쩍 넘긴 180석에 달했다. ‘야당 심판론’을 예상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2022년 20대 대선에서도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이재명 민주당 후보 간 득표율 차이가 10%포인트 이상일 것이란 여연의 예상과 달리 실제 결과는 0.73%포인트 차의 박빙이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선거 예측이 큰 차이로 빗나갔다는 건 기초적인 분석 역량이 떨어진다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

민주당과의 정책 경쟁에서도 뒤처지고 있다. 여연은 민주당이 지난달부터 상법 개정안을 비롯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방송 3법 등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관련 연구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제의 문제점’, ‘AI시대 노동법 패러다임 전환’ 등 쟁점과 먼 연구 자료만 내놓고 있다. 여연에 정통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과거 여연이 연구 결과를 내놓으면 당 지도부가 정무적으로 정책에 활용하던 때가 있었다”며 “최근에는 활용할 연구 자료가 없어 국회 사무처나 당 정책국의 분석 자료를 더 신뢰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과거 여연의 위상은 지금과 달랐다. 1995년 김영삼 정부에서 집권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정책 기구로 출범한 이후 당의 정책 개발과 여론조사 및 연구 활동을 주도했다. 전직 국민의힘 의원은 “여연의 여론조사실은 선거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가 많았다”고 했다. 초대 이영희 전 노동부장관을 비롯해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박세일 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등 정치적 색채보다는 정책적으로 유능한 인사가 주로 원장으로 임명됐다. 또한 유승민·김태호·이혜훈 전 의원 등 정치 신인을 발굴해 스타로 키워내는 인재 창구의 역할도 맡았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만 하더라도 학계에서 여연의 대외비 자료를 수소문해 돌려 보는 일이 많았다”며 “박사급 인재들도 여연에 지원을 많이해 보수의 등용문으로 역할했다”고 했다. 국회나 출입 기자 인맥까지 총동원해 비공개 여연 자료를 구하기 위해 혈안인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랬던 여연이 왜 추락했을까. 여연의 현 상황에 대해 국민의힘 관계자는 “여연이 당 주류의 논공행상을 위한 전유물처럼 돼 버린 게 결정적 이유”라고 지적했다. 당권의 향배에 따라 전문성이 부족한 인사가 원장으로 임명되고, 그에 따라 수장이 자주 교체되면서 정책 연구의 연속성이 끊기고 역량도 떨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2015년 이후 2년 임기를 모두 채운 여연 원장은 지상욱 전 의원이 유일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엔 6개월 만에 물러난 김용태 전 의원을 비롯해 박수영·김성원 의원, 홍영림 전 기자, 유의동 전 의원 등 5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교체됐다. 지난 1월 임기를 시작한 윤희숙 전 의원도 쇄신안을 놓고 지도부와 갈등한 끝에 7개월 만에 사퇴했다. 전직 국민의힘 의원은 “누가 당권을 잡느냐에 따라서 여연 원장의 얼굴도 바뀌었다”며 “대부분 1년도 안 되는 임기 동안 무슨 정책 연구를 할 수 있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연구 인력이 부족한 것도 정책 역량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재 여연에는 연구 인력 20여명 중 박사급이 3명 수준에 불과하다. 과거 여의도연구원장을 지낸 한 인사는 “정치·사회·경제 등 각 분야에 대응하려면 최소 박사급이 20명 이상 필요하다”며 “지금 인력으로는 현안 대응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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