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기반 영화, 드라마, 책 등 콘텐츠 속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다양한 작품 속 실제 인물들을 ‘리캐스트’하여 작품에는 미처 담기지 못한 삶과 사회의 면면을 기록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안녕하세요, 먼 길 오느라 힘드셨죠.” 충북 청주시 아파트에서 만난 윤성여(58)씨가 환히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윤씨는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모티브가 된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 누명을 쓰고 20년간 옥살이를 했다가 2020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심 과정에선 당시 경찰의 불법체포와 감금행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서 조작 등이 밝혀졌다.
5년 전 ‘화성 8차 사건’ 재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종덕(59) 교도관은 윤씨에 대해 “수감생활 중에도 모두에게 먼저 인사하는 등 구김살이 없었다”며 "그 (8차)사건의 진범이 맞나 의심할 정도로 밝게 지냈다"고 말한 바 있다. 정말 그랬다. 그때도, 지금도 인사성이 밝은 윤씨를 만나 근황을 들어봤다.
피고인에서 장학회 이사로

“나도 못 배웠으니까, 배움이 짧은 게 늘 아쉬웠거든요. 옛날이면 몰라도 지금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으니 도와주고 싶더라고요.”
그가 건넨 명함에는 ‘윤성여 이사’라고 적혀 있었다. 윤씨는 2023년부터 재단법인 등대장학회(이사장 장동익) 이사로 활동하며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있다. 등대장학회는 윤씨를 비롯해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과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가 함께 만든 공익재단이다. 재단 설립을 위해 필요한 출연금(5억원)은 재심 당사자들이 국가로부터 받은 형사보상금, 손해배상금으로 충당했다. 장학회는 사회복지사 추천을 받아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을 직접 만나보고 길게는 1년여 동안 교육비, 생활비 등을 지원한다. 윤씨는 배움의 기회를 얻고 성장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뿌듯하다고 말했다.

윤씨는 등대장학회 이사장이자 비슷한 피해를 겪은 장동익씨와도 가깝게 지낸다. 장씨는 1990년 벌어진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1년간 옥살이를 했다가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윤씨와 장씨는 올 초 존속살해 혐의를 받고 24년간 무기수로 복역해온 김신혜씨의 출소 현장을 찾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출소한 김씨를 봤을 때의 심정을 묻자 윤씨는 이렇게 답했다. “‘동병상련’이랄까, 김신혜씨도, 장동익씨도, 저도 20여년을 억울하게 감옥에서 살았으니까요. 겪어본 사람들만 아는 게 있어요. 겉보기엔 괜찮아 보여도 여전히 힘들죠.”

◇ 강압 수사 징계 “너무 가벼워” = 여전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윤씨는 “지나간 세월을 잊고 살려고 노력한다”면서도 “그게 잘 안 된다”고 털어놨다. 화성 8차 사건 당시 그를 범인으로 몬 경찰관들 중 진심어린 사과를 전한 사람은 단 한 명이라고 한다. 윤씨에 대한 무죄 선고 이후 해당 경찰관들에 내려진 징계는 ‘특진 취소’가 전부다. “연금을 회수하는 건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들도 이제 70~80세인데, 그냥 잊고 사는 수밖에 없죠.”
윤씨는 “우리나라는 경찰이 강압 수사를 해도 경징계만 내리면 끝"이라며 "이래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근 사례만 봐도 그렇다. 지난 8월 익산 간판정비 사업 특혜 의혹에 연루돼 수사를 받아온 업체 대표 A(40대)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조사 이후 지인에게 '(경찰이) 회사 문을 닫게 하겠다고 했다'는 등 강압 수사 정황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는 강압 수사 논란에 휩싸인 전북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경찰 3명에 경징계(감봉·견책)를 내렸다.
이와 관련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일단 강압 수사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며 “협박·폭행 등 증거가 명확할 경우엔 중징계(파면·정직 등)를 검토해야 한다”고 짚었다. 또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을 피하기 위해선 독립된 단체·학계 등이 함께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스물둘에 감옥에 들어갔으니까, 아까운 청춘 다 갔죠.” 20대부터 40대를 교도소에서 보낸 윤씨는 “지금이라도 인생을 재밌게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틈틈이 좋은 일도 하고 싶다는 그의 인생 2막 중심에는 재단법인 등대장학회가 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도우려고요.” 윤씨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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