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세계는 흔들리고 있다. 많은 이들이 ‘격동의 시대’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방에서 총성이라도 들려오는 것 같은 위기와 불안의 연속이다. 그 위기와 불안은 경제·정치·기후·기술이 뒤엉킨 복합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서로를 증폭시키고 있다.
경험한 적 없는 불안의 시대
극적 몸짓으로 표현한 드로잉
그래도 살라는 반어적 메시지
나라 안의 사정만 보더라도 달러 환율의 폭등과 코인이나 주식의 급격한 등락으로 심리적 불안과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는 출렁대고 가짜 뉴스는 기승을 부린다. 국제적으로는 신냉전·탈세계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극단적 자국 이익주의로만 치닫고 있다. 실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인 것이다. 예컨대 네가 죽어야 내가 살겠다는 식의 국가 간 무한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미술은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미국 작가 로버트 롱고(Robert Longo)가 제작한 격렬하고 극단적 몸짓의 인물이 떠오른다. 그의 ‘도시의 사람들(Men in the Cities)’(1979~1982) 연작은 대형 차콜 드로잉으로, 정장 차림의 세련된 도시인이 낙하하거나 뒤틀린 듯한 포즈들로 표현되어 있다. 이들은 온몸이 갑작스런 충격에 반응하면서, 마치 총에 맞거나 격렬하게 춤을 추는 것 같은 모습이다.

롱고는 자신의 스튜디오 옥상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예술계 친구들을 모델로 세워 그들에게 테니스공 같은 물건을 던지거나, 큰 소음의 음악으로 놀라게 하여 극적인 몸짓을 유도했다. 초기에는 영화의 ‘데스신’에서 차용하여 모델에게 마치 총알이 몸을 관통하는 듯한 순간을 연기하게 하고 그 극적 모습을 포착하기도 했다. 이렇듯 자신이 원하는 움직임이 나오도록 유도하여 사진을 찍은 후, 이를 확대하여 흑백의 드로잉으로 옮기는 것이다.

롱고의 작품은 1970년대 본격적인 포스트모던 시대로 진입하며 미디어 이미지, 표상, 기호에 대한 인식, 그리고 소비문화 비판이라는 당시 미술계의 주요 이슈를 함축한다. ‘도시의 사람들’은 영화의 장면을 차용하고 또 사진 매체를 활용한 연작으로, 이미지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구성하고 유통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후기구조주의 사유와 포스트모던 아트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낸 작품이다. 그와 함께 신디 셔먼, 잭 골드스타인, 세리 레빈 등 대표적 현대 작가들은 ‘픽처스(Pictures)’(1977)라는 전시로 이와 같은 미술의 새 장(場)을 열었다.
1970년대 포스트모던 미술이 본격화된 이후,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이미지나, 리얼리티를 거울처럼 비추는 작품에 대한 순수한 환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롱고의 작품은 그 맥락에서 의미를 갖는다. 마치 총 맞은 것같이 연출된 데스신은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대한 반응이자 동시에 내적 생명력의 발현이다. 이는 위기 앞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절망적 몸부림이자 역설적인 생명의 춤사위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해석은 보는 자의 몫이다.
작고 연약한 행성인 지구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자고 나면 들려오는 재앙과 같은 소식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신(新)산업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받지 않고 고속 질주하며 마침내 인류를 압박해 오는 AI와, 디스토피아로 치닫는 환경문제 앞에서 더 이상 초연할 수 없는 것이다. 롱고 작품의 인물처럼 밝은 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느닷없이 공격당하는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러기에 한 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요즈음, 우리 시대의 키워드는 너나없이 ‘불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불안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내야 한다. 총 맞은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그 비틀린 몸짓으로 살아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하여 스스로 다시 중심을 잡아 일으키며 삶의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고통의 경련과 광란의 춤 사이에서라도 살아내고 또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삶은 그토록 절절하고 아름답고 눈물겨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롱고의 그림이 우리에게 던지는 반어적 메시지이다.
전영백 홍익대 교수, 미술사·시각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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