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모두 리즈 트러스 때문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14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영국 노동당 정부의 대런 존스 재무차관은 지난해 10월 예산안을 공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2022년 9월 영국 총리직에 오른 트러스는 취임 직후 ‘감세를 통한 경제성장’을 내세우며 70조 원 규모에 육박하는 감세안을 발표했다. 부족해지는 세수를 메우기 위한 대책이 없는 감세 정책에 대한 우려로 시장은 발칵 뒤집혔다. 20·30년물 국채 금리가 5%대로 치솟고 파운드화 가치는 곤두박질쳤다. ‘트러스 쇼크’로 불린 시장 충격이 경제위기 우려로 비화하자 트러스 총리는 서둘러 감세안을 철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트러스 총리는 ‘영국 최단기 총리’의 불명예를 안고 취임 49일 만에 사임했다. 존스 차관은 그 후유증으로 시장이 여전히 영국의 재정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트러스 쇼크’의 그림자가 최근 일본 경제에 어른거리고 있다.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감세론’이 들끓으면서다. 세수의 34%를 차지하는 소비세를 감면하자는 것은 가뜩이나 취약한 일본 재정에 치명적이다. 하지만 야권은 물론 연립여당인 공명당까지 민생을 앞세워 현행 10%(식료품은 8%)인 소비세율을 낮추자고 요구하고 있다. 감세에 반대하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금리가 있는 세계의 무서움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섣부른 감세로 인해 일본 금융시장에 ‘트러스 쇼크’가 재연될 것을 경계했다. 시장에서는 재정 악화 우려 속에 연일 치솟는 일본 장기국채 금리를 두고 이미 ‘미니 트러스 쇼크’라는 말이 나온다.
6·3 대선을 앞둔 우리나라에서도 세금 관련 공약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모두 소득세 감세 방안을 내세우고 있지만 대체 재원 확보 방안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설명이 없다. 재정을 흔드는 감세는 재앙이다. 대선 후보들의 세금 인하 포퓰리즘이 한국판 ‘트러스 쇼크’를 초래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