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옥찬 심리상담사ㅣ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연출: 장태유/ 극본: fGRD/출연: 임윤아, 이채민, 강한나, 최귀화, 윤서아 등)은 웹소설 <연산군의 셰프로 살아남기>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다. 셰프인 연지영(임윤아 분)이 인생 최고의 순간에 타임슬립하여 폭군이자 절대 미각을 가진 조선의 왕 이헌(이채민 분)을 만나는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다.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서 현재를 사는 연지영(이채민 분)이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조선시대로 가서 이헌(이채민 분)을 만난다. 연지영은 역사 지식을 떠올려 자신이 만나는 이헌을 알아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저 사내는 조선 최고의 미식가이자 최고의 폭군으로 불렸던 연희군이다”라고 말이다. 여기서 연희군은 조선시대의 왕들 중에서 가장 폭력적인 연산군을 모델로 한다.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서 흥미로운 점은, 왕인 이헌(이채민 분)과 연지영(임윤아 분) 둘 다 어머니가 부재한다. 이헌이 연지영을 처음 만났을 때, 이헌은 연지영이 만들어 준 비빔밥을 먹으면서 어릴 적 어머니를 떠올린다. ‘프루스트 현상’처럼 냄새와 맛을 통해 과거 인상적인 기억이 떠오를 수는 있다. 그런데 이헌은 비빔밥을 처음 먹어본다. 그렇기 때문에 프루스트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이헌(이채민 분)은 연지영(임윤아 분)을 만나면서부터 종종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이헌이 어머니를 떠올리는 것은 단지 음식 때문만이 아니다. 어찌 보면 연지영의 태도와 그에 적절한 외모가 어머니를 떠오르게 했을 것이다. 이헌이 연지영을 만나서 처음으로 어머니를 떠올랐던 장면과 과거 이헌이 어머니와 함께 했던 장면의 공통점은 있다. 그것은 연지영과 이헌의 어머니가 이헌에게 밥을 챙겨서 먹여주는 것이다. 즉, 엄마의 돌봄이다.
심리상담학에서는 어린 시절에 경험한 엄마의 돌봄을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래도 아이의 성격 발달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의 건강한 성격 발달에 중요한 환경으로 심리학자인 도널드 위니컷은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의 안아주기(holding) 환경을 이야기했다. 엄마와 아이가 신체접촉을 하는 안아주기뿐만 아니라, 엄마가 아이의 다양한 정서를 마음으로 보듬어 안아주기를 강조한 것이다.
한 아이의 성격은 타고난 기질에 더하여 그 아이가 마주하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형성된다. 아이의 삶을 떠올려 보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하는 환경은 엄마다. 그리고 아이가 속한 가정의 부모다. 그래서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살면서 경험한 부모와의 정서적 관계를 중요하게 살펴보기도 한다. 초기 부모-자녀 관계는 아이의 의식이 충분히 발달하기 전에 형성되는 무의식적인 정서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서 연지영(임윤아 분)은 이헌(이채민 분)이 보이는 무자비한 모습을 보고 폭군이라는 단어를 쓴다. 이헌의 모습을 보면, 연지영이 욕하듯이 내뱉는 ‘저 미친 사이코 새끼’는 적절한 표현이다. 이헌이 아무리 왕이라지만 웃으면서 자비 없이 사람을 죽이려는 모습은 사이코패스처럼 보인다. 역사적 인물인 연산군을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고 평가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헌(이채민 분)은 어릴 적에 엄마의 돌봄을 갑자기 박탈당했다. 심지어 엄마가 궁에서 끌려나가는 것을 보고 기억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연산군이 폭군이 된 이유를 심리학적으로 추측할 때 돌봄을 주는 엄마의 부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린아이에게 엄마의 돌봄이 사라지면, 아이는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인식하게 된다. 게다가 어린아이는 상황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엄마의 부재를 심지어 엄마에게 버림받은 것으로 경험하기도 한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절대적인 의존대상이다. 어린아이에게는 엄마가 곧 세상이고, 세상이 곧 엄마다. 아이는 엄마를 통해서 세상을 경험하고, 자기 자신을 경험한다. 특히, 아이는 엄마의 돌봄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지 아닌지를 경험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잘 변하지 않는 사고의 틀을 만든다. 그래서 부정적인 사고의 틀을 만들게 되면, 세상에는 자기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감싸 안아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없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어떨까. 극도로 슬퍼하거나 극도로 분노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드라마 <폭군의 셰프>의 이헌(이채민 분)처럼 말이다.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서 이헌(이채민 분)은 엄마의 돌봄을 대신해 줄 아빠도 없었다. 그런데 연지영(임윤아 분)은 다행히도 아빠의 돌봄이 있었다.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와 같은 충분히 좋은 아빠(good enough father)였다. 연지영은 집으로 돌아가서 아빠를 보고 싶어 하는 장면을 보면 아빠와 친밀한 관계가 느껴진다. 그리고 연지영이 이헌에게 아빠가 만들어 줬던 음식이라고 할 때는 아빠의 돌봄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엄마, 아빠의 돌봄은 아이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하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아이의 돌봄에 대한 여러 정책들이 나온다. 상담사로서 아쉬운 것은 엄마와 아빠의 돌봄이 중요함에도 엄마와 아빠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은 별로 없어 보인다.
특히, 엄마와 아빠가 함께 직장을 다니는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아이에게 필요한 부모의 돌봄을 어떻게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함께 할 시간이 없으니 말이다. 엄마와 아빠의 충분히 좋은 돌봄을 받아 본 아이가 부모가 되면 자녀에게 충분히 좋은 돌봄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가 수월하게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시스템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 최옥찬 심리상담사는
"그 사람 참 못 됐다"라는 평가와 비난보다는 "그 사람 참 안 됐다"라는 이해와 공감을 직업으로 하는 심리상담사입니다. 내 마음이 취약해서 스트레스를 너무 잘 받다보니 힐링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주 드라마와 영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을 찾아서 소비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