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개봉 영화 ‘한란’서 연기 변신 성공

2006년 영화 ‘마음이’로 스크린에 데뷔한 배우 김향기(25)는 아기 광고모델 시절을 제외하고도 데뷔 20주년을 앞둔 중견이다. 긴 경력에도 한없이 맑고 앳된 그의 얼굴을 보면 엄마 역할이 아직은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 ‘한란’(연출 하명미·사진) 속 굳센 엄마 ‘고아진’을 연기한 김향기를 보면 이 배우가 소화하지 못할 역할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6일 개봉하는 영화 ‘한란’은 1948년 제주 4·3 당시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으로 몸을 숨긴 모녀의 생존 여정을 그렸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무장봉기가 일어나고, 국가는 ‘토벌’이라는 이름으로 강경 진압에 나섰던 때, 곳곳에 “산에 있는 자는 모두 폭도로 간주해 사살한다”는 포고령이 나붙은 때였다.
물질해 먹고살던 스물여섯 아진은 토벌대를 피해 산으로 간 남편을 찾으러 마을 사람들과 산에 오른다. 하나뿐인 딸 ‘해생’을 시어머니에게 맡겨둔 채였다. 그러다 마을이 토벌대의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아진은 딸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혼자 마을로 내려간다.
총명한 해생은 토벌대의 무차별 공격 속에 홀로 남아 엄마를 찾아 산으로 향한다. 한편 무장대의 일원인 아진의 남편은 가족 걱정에 마을로 내려가기로 결심하지만, 동료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가족은 과연 무사히 재회할 수 있을까. 김향기는 3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에서 여섯 살 딸을 둔 엄마 역할에 처음 도전했다. 총탄이 날아다니며 도륙이 난무하는 제주 땅에서 딸을 구하기 위해 산을 넘고 몸을 숨기는 여정은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다. 해생 역의 아역 김민채 역시 김향기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화면에는 내내 자막이 도입된다. 육지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어 대사 때문이다. 하명미 감독은 “제주어 공식 감수자만 다섯 명을 뒀고, 인물의 말투와 성격에 맞게 대사를 살리기 위해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2025년 현재 제주 4·3평화공원 묘역에 자리 잡은 빽빽한 묘비를 비추며 끝난다.
제목 ‘한란’은 국내에선 한라산에만 자생하는 천연기념물 난초를 의미한다. 돌과 바람, 거친 환경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한란은 어두운 시절을 강인하게 살아낸 제주 여인의 모습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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