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위한 ‘그린정책’ 나열… 탄소중립 로드맵은 ‘실종’ [심층기획-2025 대선 매니페스토-내일을 바꾸는 약속]

2025-05-06

③ 정책공약 검증 -기후·에너지·환경

기후위기 골든타임인데…

9월 ‘2035년 NDC’ 확정… 유엔 제출

2026년 3월까지 탄소중립법 개정 시한

차기 대통령 ‘그린정책’ 막중한 책임

온실가스 감축 목표 ‘…’

이재명만 ‘2030년 40% 감축’ 제시

재생에너지 등 신산업 육성에 치중

탄소집약적산업 전환 해법은 빠져

현실 회피 뜬구름 공약만

후보들마다 “에너지 인프라 구축”

사회적 갈등 관리할 전략엔 ‘침묵’

생태 환경보호 공약도 李만 유일

차기 대통령은 취임 직후 기후·에너지 정책 수립 및 집행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는다. 새 정부는 출범 3개월 만인 9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확정해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내년 3월까지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탄소중립기본법도 기한에 맞춰 개정할 필요도 있다. 현행법에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단계별 감축 경로가 없어 헌재가 일부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초대형 산불과 같은 기후재난이 빈번해지면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체감하는 국민 공감대도 형성됐다. 이처럼 중대한 국가적 과제가 쌓여있지만, 전문가들은 대선 후보들이 기후·에너지 공약을 경제성장 수단으로만 부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갈등이 적은 ‘경제성장 일변도’만 외치는 후보들에게 현실적 난제를 풀어갈 해법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취재팀은 6·3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의 기후·에너지·환경 공약을 다각도로 분석하기 위해 학계, 시민사회, 연구기관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에게 공약 심층 검토를 요청했다. 자문단은 정당 구분 없이 모든 후보가 에너지 산업 육성과 전력 인프라 확충 같은 수단적 측면에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 대응 수단만 나열한 공약

6일 취재팀이 각 후보의 기후·에너지·환경 공약을 분석한 결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은 공약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아직 명시하지 않았다. 이재명 후보는 2018년 대비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과 2040년 석탄발전 폐쇄, 전국 ‘재생에너지 100%’ 산단 조성 등을 공약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원전 비중을 60%로 확대하고 원전, 이차전지 등 유망수출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원전 수출과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립을 언급했지만 구체적 실행 방안까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무소속 한덕수 예비후보는 국무총리 재임 시절인 지난 4월 유엔 기후 정상회의에서 2030년까지 무탄소 에너지원 비중을 7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준석 후보와 한 예비후보는 기후·에너지 대선 공약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각 캠프에 확인 후 개혁신당 22대 총선 공약과 공식 석상에서 발언한 내용을 토대로 요약했다.

주요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서 산업 부문 전환 계획은 눈에 띄지 않았다. 주요 정당 모두 재생에너지와 탄소중립산업, 전기차, 이차전지 등 신산업 육성을 약속했지만 실제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기존 탄소집약적 산업의 전환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재명 후보는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에너지저장장치(ESS) 산업 경쟁력 강화를, 김 후보는 원전과 이차전지 같은 유망 수출산업 투자 확대를 각각 공약했다. 자문단은 이재명 후보가 “석유화학산업의 근본적 전환 대신 ‘플라스틱 포장재 감축’이라는 생활 차원의 공약만 제시한 점이 이 문제를 잘 보여준다며, 탄소집약적 업종의 배출이 온실가스 감축의 가장 큰 걸림돌임을 고려할 때 차기 정부의 전체적인 탄소중립 로드맵 제시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전력망 확충의 현실적 난제 회피

전력망 확보는 대선 후보들의 주요 기후·에너지 공약이다. 이재명 후보는 분산형 에너지 체계를 구축하고 인공지능(AI) 기반 지능형 전력망을 활용해 지역에 에너지 자립마을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또 2030년까지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를 건설해 20GW 규모의 남서해안 해상풍력을 주요 산업지대로 송전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후보는 원전을 확대해 반도체, 데이터 등 미래 첨단 산업의 전력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공약했다. 이준석 후보는 지난해 4·15 총선 때 당 10대 정책에서 전력 부족으로 인한 정전 방지 기반 마련과 노후 전력 설비 교체를 언급했다.

주요 후보들은 저마다 에너지 인프라 구축 계획을 내놓았지만, 현실적 어려움과 사회적 갈등을 관리할 전략을 제시하지 않았다. 한 자문위원은 “이재명 후보는 에너지 분산을 주장하면서 에너지고속도로 건설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며 “일정 지역에 편중된 에너지 생산은 고압송전선로 건설 갈등 문제를 야기할 뿐 아니라 자신의 공약 간 충돌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 후보는 원전 비중 60% 확대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대규모 연구개발비 지원과 국제 협력 강화로 한국형 소형모듈원전(SMR) 조기 상용화를 실현해 원자력 비중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한 자문위원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9월 시행을 앞둔 시점에서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준석 후보는 원전 수출을 도모하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건립한다고 했지만 구체적 실행 방안과 계획을 아직 대선 공약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김 후보는 SMR 개발 상용화로 전기료 반값 공약을 내세웠지만, 현실성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낸다는 평가다. 원전 신규 건설에 필요한 긴 준비 기간을 고려하면 대통령 5년 임기 내 실질적인 요금 인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전력의 심각한 부채 상황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가정용 수준으로 낮추는 데 재정적 제약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 자문위원은 “SMR 기술은 현재 상용화 이전 단계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서도 실제 가동된 사례가 없어 이를 통한 값싼 전기 공급 가능성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고 평가했다.

한 예비후보는 국무총리 시절 전기요금 현실화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외국의 에너지 가격 등에 따라 국내 전기요금 조정을 해야 하는 부분에 손을 안 댔다”며 정부 주도의 전기요금 결정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재명 후보는 원전에 모호한 태도를 보여서, 실효성 있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제안하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AI 등 새로운 기술 발전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를 언급하면서도 원전에 대한 구체적 입장은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자문위원은 “원전 찬반 논쟁에 매몰되기보다는 어떻게 원전을 관리하고 활용할 것인지, 특히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립이나 신규 원전 건설과 같은 현안을 다룬 정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유보적 태도로 인해 에너지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책 관심도 양극화, 장기비전 제시해야

주요 후보별 기후·에너지 정책은 행정체계 개편과 환경 가치에 대한 인식 차이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기후·에너지 공약을 발표한 후보 중에서 이재명 후보가 생태환경보호 공약을 낸 유일한 후보였다. 육지와 해양의 생물다양성 보호구역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국가생물다양성위원회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후보는 환경보호 공약 없이 원전 중심 정책에만 집중했고, 이준석 후보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참여하겠다고 언급했으나 구체적인 공약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특히 이준석 후보가 제시한 환경부 폐지 및 건설교통부 통합 방안은 환경 가치를 경시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수질관리와 홍수통제 기능이 환경부로 일원화되어 수자원 통합관리로 진전된 현 체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평가다. 단순한 조직개편으로 효율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접근이 부처 간 협업과 거버넌스의 복잡성을 간과했다고도 자문단은 짚었다.

대선 후보들의 기후·에너지 정책 공약은 경제성장 프레임으로 수렴되는 추세다.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들은 기후위기 대응을 경제성장의 새로운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지난 24일 새만금에서 발표한 6개 정책 공약 중 5개에 ‘경제’ 키워드가 포함된 것도 이를 방증한다. 경제 도약과 성장을 강조하며 기후·에너지 정책을 통해 경제 활성화를 이루겠다는 취지다. 이는 3년 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기후위기를 산업전환과 국가 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언급한 기조와 일치한다. 후보들은 유권자의 호응을 얻기 쉬운 성장 위주 공약에 치중하며, 산업계와 환경단체 간 의견 대립이 예상되는 쟁점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 표명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자문단은 차기 정부가 5년 임기를 넘어선 장기적 탄소중립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새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까지 우리 사회와 경제 전반이 어떻게 전환해야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된다.

‘기후변화’는 세계일보가 공공의창·리서치뷰와 4월 15∼16일 실시한 여론조사(ARS 자동응답조사)에서 ‘차기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둬야 할 미래세대 정책’으로 응답자의 14.3%나 선택한 과제다. 한 자문위원은 “새 정부에서도 기후대응 논의가 지연되고 공전한다면 기후위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고 경고했다.

<공약 평가에 도움주신 분들>

기후솔루션·녹색전환연구소, 김정은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한국정책학회 환경기후연구회 위원장), 김창수 부경대 행정복지학부 교수(한국정책학회 공약평가단), 윤세종 변호사(플랜 1.5),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익명).

공동기획 : 공공의창, 한국정책학회

매니페스토취재팀=조병욱·장민주·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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