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뇌에는 약 860억~1000억 개의 뉴런이 있고 각 뉴런에는 1만 개가량의 시냅스가 달려 있다. 수백 조 개의 시냅스로 얽힌 신경 네트워크가 학습과 기억, 감정 등을 관장한다. 그런데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습득한 학습 방식은 겨우 2만 개의 뉴런을 가진 해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해삼이 먹이를 얻으면 ‘보상’을 받고 독을 피하지 못하면 ‘처벌’을 경험하며 생존을 배운 것처럼 인간 역시 쾌감을 주는 행동을 기억하고 반복한다. 바로 ‘보상 기반 학습’이다.
중독심리학 권위자 저드슨 브루어는 신간 ‘중독은 뇌를 어떻게 바꾸는가’에서 중독의 메커니즘을 이처럼 설명한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하고 워싱턴대에서 의학 박사를 받은 뒤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로 20여 년간 일해 온 그는 임상 경험과 뇌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중독이 어떻게 형성되고 이를 어떻게 교정할 수 있는지 탐구한다.
보상 기반 학습은 좋든 나쁘든 특정 습관이 자리 잡는 근본 원리다. 시험을 잘 보면 칭찬을 받아 기분이 좋고, 칭찬을 받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는 보상→행동의 순환 고리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 회로가 잘못 학습되면 뇌가 ‘가짜 보상’을 받아들이고 해롭거나 불쾌한 행동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매커니즘은 도파민의 위력에 올라타면 더욱 강력해진다. 저자는 나쁜 습관을 넘어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자기 파괴적 결과를 낳는데도 멈추지 못하는 상태를 중독이라고 정의한다.
예컨대 참전용사가 전쟁 당시 끔찍한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촉발 요인) 술을 마셔 만취했고(행동) 그 순간에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견디는 것보다 낫다고 느꼈다면(보상)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술에 의지하게 된다. 이런 반복이 쌓이면 괴로운 기억을 피하려는 습관이 굳어지고 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이어진다. 정작 저자가 만난 마약 의존자들은 “마약을 할 때 초조하고 뒤숭숭하며 피해망상적인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저자는 알코올·약물뿐 아니라 다양한 중독의 영역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소셜미디어부터 자아, 재미, 생각, 사랑까지. 나심 탈레브는 “현대 기술과 노예제의 차이는 노예는 자신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현대인들은 구속돼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소셜미디어나 쇼츠에 몰입하며 집중력을 심각하게 잃어가고 있다. 끊임없이 소셜미디어 앱을 확인하고 게시물에 달린 반응을 살피며 ‘좋아요’ 숫자에 연연하다가 다시 새로운 게시물을 올린다. 과거에는 육체적 생존을 위해 보상 기반 학습이 작동했다면 지금은 ‘사회적 생존’을 위해 같은 메커니즘이 돌아가는 셈이다. 습관이라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결국 과도한 사용이 자존감 저하와 사회적 위축 같은 부정적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분을 좋게 하려고 강박적으로 소셜미디어에 접속하지만 되레 부정적인 감정만 떠안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중독의 고리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저자는 ‘마음 챙김 명상’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마음 챙김 명상은 불안·충동·갈망이 일어나는 순간 그것을 억누르거나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관찰하는 훈련이다. 이 과정에서 뇌의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고 충동적 보상 회로를 제어하는 능력이 강화된다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로 입증됐다. 의사인 저자는 금연 임상실험에서 명상을 훈련한 집단이 기존 금연 프로그램 참여자보다 2배 이상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고 소개한다.
“마음 챙김 명상은 세상을 더 명료하게 보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은 충동을 억누르는 데 있지 않다. 갈망과 불안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관찰하는 데서 중독의 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시작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도파민 보상에 무턱대고 끌려가지 않고 더 신중하게 선택하는 삶의 방식을 배울 수 있다. 저자는 그제서야 얄팍한 흥분이 아닌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2만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