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마음은 설명되지 않는다
벤지 워터하우스 지음
김희정 옮김
어크로스
의사가 들려주는 병원 이야기에는 생사의 갈림길이 종종 등장하게 마련. 영국의 정신과 의사가 쓴 이 책도 그렇다. 그가 수련의로 처음 일하게 된 곳은 차분한 상담실이 아니라, 의료진에게 환자의 폭력적 행동에 대한 방어법부터 알려주는 병동이다. 자살·자해 등의 우려 때문에 당장 입원이 시급한 환자는 넘치지만, 늘 병상이 부족한 공공 병원이기도 하다. 이곳의 환자는 다양하다. 자신을 죽은 상태로 여기는 환자, 동물이라 여기는 환자, 메시아나 백신 개발자를 자처하는 환자, 유명 스타와 결혼을 위해 영국에 왔다는 미국인 환자....
한데 지은이는 무엇보다 그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내키지는 않지만 정신과 의료진에게는 중요하게 권고되기 때문에 받기 시작한 심리 상담, 부모의 말과 사뭇 다른 그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 등은 책의 전반적 흐름과도 맞물린다. 호전됐다고 여겼던 환자가 숨지는 일을 겪은 동료나 병상이 나기를 기다리던 환자의 주소지 주변에서 비극적 사건이 발생해 혼비백산한 그 자신의 경험 등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심각한 상황을 감추던 자살 시도자의 목숨을 기적처럼, 우연히 구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런 나날을 지은이는 특유의 유머 감각을 곁들여 전하는데, 그 자신이 우울증 때문에 약을 받으러 가정의를 찾아간 일도 그렇다. 한데 그를 회복시킨 건 약이 아니었다. 어렵사리 휴직 허가까지 받았던 그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상상황이 벌어지자 2주 만에 자진해서 병원에 돌아간다.
지은이가 10년쯤 일해온 영국의 공공 의료 서비스 환경이 한국과 매사 똑같지는 않을 터.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는 치료법의 역사와 변화, 약물에 대한 맹신이나 부작용을 비롯해 정신과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더 많은 의료 자원의 투입이 절실한 분야라는 점도 포함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