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불안해 견딜 수 없어요"…사교육에 매달리는 대한민국

2025-08-19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사교육 공화국’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9조2000억원에 달하며 사교육 참여율도 80% 수준이다. ‘편한 의자를 놔두고 모두가 일어서서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학부모와 수험생 전부를 피로하게 하는 이 같은 사교육 열풍의 원인은 무엇일까.

사교육 열풍…결국 미래 일자리 놓고 벌이는 ‘사다리 올라타기’

남궁지영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은 ‘사교육 과열 현상, 해법은 없는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사교육 열풍에 대해 다양한 원인을 지목한다. 남궁 연구원은 대학 서열화와 대입경쟁 심화 분위기 속에서 공교육에 대한 불신 팽배를 첫째 원인으로 꼽는다.

보고서는 “상위권 대학 진학이 사회적 지위 획득과 직결된다는 인식이 만연하며 이는 치열한 대학입시 경쟁을 유발한다”며 “그뿐만 아니라 공교육은 대학입시를 잘 대비해 주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감이 높다”고 지적했다. 특히 보고서는 수요와 공급 간의 이른바 ‘미스매치’가 결국 사교육 시장을 키웠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공교육의 본질과 역할은 지·덕·체의 전인적 성장에 있으나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는 높은 성적을 통한 대입 성공과 사회적 지위 획득이기 때문에 공교육의 역할과 수요자의 요구 간 차이가 매우 크다”고 지적한다.

치열한 내신 경쟁 또한 사교육 과열로 이어진다. 보고서는 “고등학교 내신 평가는 성취평가제(절대평가)와 9등급 상대평가를 병기하고 있어 내신 경쟁이 치열하다”며 “수행평가 부담이 큰 상황에서 학교생활기록부에 작성되는 창의적 체험활동과 고교 교육과정을 넘어선 심화탐구활동, 여기에 수능 준비까지 병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 같은 상황에서 대입 성공을 위해 높은 성적 및 질 높은 학교생활기록부를 어느정도 보장해 줄 수 있는 학원 등 사교육에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보고서는 또 공교육 내 ‘맞춤형 교육’의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모든 학생에게 균등한 교육기회 제공을 목표로 하는 공교육 시스템은 개별 학생의 소질, 적성, 수준 등을 고려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데 한계가 명확하다. 이에 따라 학생과 학부모는 교과보충, 선행학습 등 학생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 홍보하는 학원 등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계속 바뀌는 교육정책 또한 사교육 의존도를 심화시킨다. 보고서는 “개편되는 교육정책 내용에 대한 홍보와 지속성 부족으로 불신감이 증대되며 특히 대학제도와 입시정책의 지속성 부족에서 오는 불신감은 사교육 시장에 의존해 정보를 확보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난다”며 “대학 입시정책이나 입학전략을 설명하는 행사를 특정 학원 등 사교육 운영 주체들이 주관하는 경향은 공교육을 경시하는 풍토로 이어지며 개편된 교육정책에 대한 홍보 부족은 학부모의 불신감을 증대시킨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에 따라 학부모가 자녀의 장래를 학교와 교원의 능력에 의존하기보다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무엇보다 보고서는 사교육 문제를 단순 대입제도를 넘어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고 계층간 소득격차가 확대되는 ‘노동시장 문제’와 연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고서는 “노동시장에서 대기업 등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가운데 대학 진학률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청년(25~29세) 실업률은 2013년부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며 “숙련 편향적 기술진보(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 경제위기, 코로나 팬데믹 등의 여파로 경제적 격차가 확대되고 취약계층이 증가하면서 소득격차 및 그에 따른 교육기회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국민들의 미래 사회계층 이동 가능성에 대한 인식도 지난 10여 년간 점차 비관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녀 세대의 사회계층 이동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률은 2009년 48.4%에서 2023년 29.1%로 꾸준히 하락 중이다.

결국 이 같은 고용불안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명문대 및 의·약학계열 대학 선호도로 이어지며 결과적으로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게 된다. 취학 전 유아 사교육 문제, 초등 의대반 학원 성행 문제, N수생 비율 증가 문제 등도 결국 노동시장 문제와 관련이 깊다. 보고서는 “최근 교육통계자료를 살펴보면 학생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대입제도를 개선한다 하더라도 치열한 입시경쟁 및 사교육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교육 근절은 불가능…교육격차 완화에 집중해야

그렇다면 이 같은 사교육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보고서는 “사교육은 근절할 수 없고, 근절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고서는 “좋은 일자리 부족 등으로 치열한 입시경쟁이 지속되는 한 사교육 근절은 매우 어려운 과제"라며 "입시경쟁이 없더라도 맞춤형 사교육을 통해 부족한 학습을 채우는 것은 학생들에게 바람직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사교육 대책은 사회적 불균형과 교육격차를 완화하고 공교육의 효과성을 제고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며 “모든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도모하는 동시에 중하위권 학생들의 학력 증진을 위한 맞춤형 학교 교육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이어 “공교육의 효과성이 입증되면 사교육 의존도는 자연스럽게 완화된다는 이치에 따라 현재 우리 공교육이 가진 다양한 문제와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미래 사회에서 요구되는 역량을 키워줄 수 있는 방향으로의 중·장기적인 교육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성장·역량 중심의 수업 및 평가방식의 변화와 대입제도 개편 등도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고서는 “기존 고등학교 평가방식은 상급학교 진학 자료로의 활용이 법적으로 강제될 정도의 선발·분류 중심의 평가라는 점에서 학생의 학습 과정과 성장에 초점을 둔 평가로의 변화가 요구된다”며 “급격한 교육의 변화는 학생·학부모의 불안감을 자극해 사교육 수요 증가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미래 사회 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력, 협력적 문제해결력 등을 키워 줄 수 있는 수업 및 평가방식으로의 점진적 변화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관련 방안으로 ‘고등학교 성취평가제(5등급 상대평가 병기)’ 시행 및 ‘최소 성취수준 보장을 위한 재이수 제도’를 중장기적 계획 하에 IB(국제 바칼로레아)와 같은 탐구형 수업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창의력·문제해결력 중심의 논·서술형 평가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상대평가를 병기하지 않는 성취평가제(절대평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시대가 요구하는 다면적 역량을 측정하는 데 한계가 있는 현행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최소 학업능력 검증 도구(수능 최저학력 기준)로만 활용하고 학교 내에서의 배움 과정과 다양성에 가치를 둔 역량 중심 평가 결과를 연계해 활용하는 대입전형을 확대함으로써 사교육보다 공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며 “대학의 신입생 선발 자율성도 확대하는 한편 사회적 격차 완화를 위해 농어촌 등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을 배려하는 대입 정책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대학서열 문제와 관련해서는 “고착화된 대학 서열은 대학입시 경쟁을 가중시키고 있으므로 개별 대학교육의 질을 상향 평준화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해 대학 서열화 완화를 유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국공립과 사립을 막론하고 경쟁력 있는 대학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법 사교육 근절 방안과 관련해서는 사교육 실태 모니터링 외에 편법·불법 사교육기관 관리·감독을 위한 학원법 정비 및 사교육 관리센터 설치 등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또 교육부와 통계청이 매년 공개하는 사교육비 규모는 초중고만을 대상으로 해 취학 전 유아 및 N수생의 사교육 실태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유아 및 N수생을 포함한 사교육 통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유아 및 초중고와 N수생 데이터 연계(조사 시기, 방법, 대상, 사교육 범위, 유형, 측정 방법 등)를 고려한 통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고서는 “사교육 문제는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며, 양극화된 사회구조와 노골적인 학벌주의 사회 문제와 결부돼 있다”며 “따라서 교육의 개선만으로는 사교육을 완화하기 어렵고, 사회구조 개혁과 더불어 학력·학벌 중심 사회에 대한 국민 의식 변화가 동반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