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에서 다양한 융합형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이른바 ‘융합학과’의 수가 2023년 기준 557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2023년 융합학과의 폐지율이 30%를 넘어서는 등 융합학과를 둘러싼 ‘떼었다 붙이기’도 한창이라 보다 근원적인 융합학과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9일 유예림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이 발간한 ‘대학의 융합교육, 현황과 과제’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융합학과가 다수 개설된 반면 비수도권 대학에서는 관련 학과 폐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융합학과 운영 실태를 보면 공학계열과 전공이론, 강의식 및 상대평가 중심으로 강좌가 운영 중이며 졸업생 취업률은 높은 편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향후에는 대학 특성과 학생 수요를 고려한 다양한 융합교육 모델 개발, 교원의 융합교육 역량 강화 및 협력적 문화 조성, 신설 학과 학생들의 진로·취업 불안 해소, 융합교육의 질 관리 및 환류 체계 마련 등을 위해 대학과 정부 차원의 노력이 요청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정부는 2016년 ‘창의혁신인재 양성을 위한 대학 학사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한 후 각종 대학재정지원사업 및 고등교육법 전면 개정 등을 통해 대학의 융합교육을 촉진하려 애써왔다. 특히 2021년 ‘첨단분야 혁신융합대학사업(COSS)’과 2023년 ‘인문사회 융합인재 양성사업(HUSS)’ 출범 등으로 대학 융합교육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놓았다.
반면 대학 현장에서는 융합교육이 대학이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형태가 아닌,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확산돼 융합학과의 지속가능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융합학과 개설 등 융합인재 양성을 위한 학사구조 개편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꾸준하다. 국가수준의 대규모 실태 분석이 이뤄지지 않아 융합교육의 개념과 지향점에 대한 이해가 대학마다 다른데다, 이에 따라 대학의 융합교육이 체계적으로 추진되기 어렵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현재 융합학과 실태를 보면 한번 개설 시 기존 학과를 유지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기존에 없던 교육편제단위 신설 보다는 학과 또는 단과대학명을 단순 변경해 운영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의 관련 수치를 보면 대학 융합학과는 공학계열 중 정보·통신공학(228개), 응용소프트웨어공학(186개), 전산학·컴퓨터공학(175개)과 같은 ‘컴퓨터·통신’ 분야에서 가장 많이 개설됐다. 이는 기술 진보에 따라 첨단·신산업 분야의 인재 양성이 강조되면서 인공지능, 빅데이터, 네트워크 등 IT를 기반으로 융합되는 학문분야에 대한 수요 증가의 결과다.
컴퓨터·통신 분야 다음으로는 기계공학(166개), 생명공학(122개), 경영학(106개) 분야에서 융합학과가 많이 개설되었으며 최근에는 교양공학(124개), 교양인문학(86개), 기타디자인(108개), 교양사회과학(62개) 등 전공자율선택제 또는 전공 기초과정을 운영하는 분야에서도 융합학과·전공이 많이 개설됐다.
융합학과 강좌는 1학년(25.2%)과 2학년(27.1%)을 대상으로 다수 개설 됐으며 전공선택 시기인 2학년 대상의 강좌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융합학과 강좌는 교양보다는 ‘전공’ 중심으로 운영되며 전공 중에서도 전공 이론의 개설률이 높고, 전공 실험실습의 개설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융합학과의 신입생 충원율은 2014년과 2023년을 제외하고는 전체 학과 대비 높지 않은 수준이다. 반면 융합학과의 졸업생 취업률은 2022년 기준 69.6%로 전체학과 평균(63.8%) 대비 높았다.
보고서는 융합학과와 관련해 “정부재정지원사업이 융합교육의 추진 동력을 제공하지만 단기간의 양적 성과에 집중하고 있어 융합교육이 지속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며 “대학 융합교육의 안정적 운영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융합학과의 질 관리와 환류 체계를 체계적으로 마련·실행할 필요가 있으며 대학들은 상호 자원 공유를 활성화하기 위해 대학 간 협력 문화를 조성하고 정부는 현재 추진 중인 COSS, HUSS 등의 대학 간 융합교육 컨소시엄을 중장기 계획에 기초해 꾸준히 시행할 수 있도록 관련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학은 특성과 수요자의 요구 등을 고려해 융합교육의 방향과 목표를 재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초역량강화형, 문제해결형, 취업연계형과 같은 다양한 융합교육 모델을 발굴·실천할 필요가 있다”며 “다양한 학과·전공의 학생들이 융합교육 경험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교양 교과목을 확대하거나 ‘이중설강(double listing)’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융합학과에 맞춤함 교습방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보고서는 “융합 교과목 성격에 부합하는 팀티칭 등의 협력적 교수 설계 방식을 확대 적용하고, 학생들이 서로의 성과에 영향을 받지 않고 협력을 통해 융합역량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절대평가 방식을 권고할 필요가 있다”며 “참여 교원 개인의 열의와 성의에 기대기 보다는 대학의 공식적 지원체계를 바탕으로 교원의 융합교육 역량 강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이외에도 융합교육의 경우 교원들 또한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해당 학과 선배나 졸업생이 참여해 후배들을 지원하는 제도 및 융합교육 과정별 경력 로드맵을 개발·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학생들이 본인의 학습 과정을 스스로 성찰하고 향후 진로·취업 계획과 방안을 수립할 수 있도록 ‘디지털 배지(digital badge·학생의 학습 이력 및 경험을 자신만의 디지털 지갑에 간직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펼쳐 보일 수 있는 일종의 개인 포트폴리오)’ 활용을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