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식은 영원하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시간이 흘러도 재밌다. 아니, 기대하지 않았던 공감포인트를 더해준다. 2005년 개봉한 영화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가 그렇다.
어머나, 세상에! ‘꽃미남’ 이준기의 탄생이 엊그제 같더니, 벌써 20주년이란다. 눈 가리고 외줄 타던 ‘장생’(감우성)의 삶이 그리 안타까웠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봐도 그 느낌 그대로다. 그리고 새삼 깨달은 사실 하나, ‘N차 관람’ 문화 시초가 바로 ‘왕의 남자’다. 올해 개봉 20주년을 맞이한 ‘왕의 남자’에 관한 모든 걸, 연출을 맡았던 이준익 감독에게 창간 20주년을 맞은 동년배 ‘스포츠경향’이 이모저모 꼬치꼬치 물었다.

■상영관 313개로 1051만명을 모았다고?
‘왕의 남자’는 조선시대 연산조, 남사당패의 광대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이 타고난 재주와 카리스마로 궁에 입성하게 된 뒤, 연산(정진영)과 그의 애첩인 녹수(강성연),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정쟁에 휘말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신인이었던 이준기가 이 작품으로 ‘꽃미남’ 스타로 급부상하며 대한민국을 아주 뜨겁게 달궜다.
입소문만으로 흥행을 일군, 그야말로 진짜 ‘천만영화’다. 고작 313개의 상영관으로 누적관객수 1051만명을 모으며, 2006년 역대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했으니 말이다.
“당시엔 극장 체인시스템이 아니라 상영관도 많지 않았고, 게다가 성수기라서 쟁쟁한 경쟁작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 사이에 상영관을 점유하기 어려웠죠. 또 이준기는 완전 신인이었고 감우성, 정진영 등 주연배우들도 당시엔 ‘흥행보증수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왕의 남자’에 대한 기대가 그리 높지 않았고요. 그런 와중에 순전히 입소문만으로, 관객의 힘으로 만들어낸 ‘천만’ 기록이었어요. 자연발생적인 힘이라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고요. 당시에 ‘왕의 남자’ 팬카페도 생겼는데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어요. 매년 재상영을 하면서 개봉일을 기념하는데, 올해 20주년이라 더 기념적인 행사가 될 것 같네요.”

■‘N차 관람’ 서막을 올리다
‘왕의 남자’는 N차 관람 문화의 원조다. 어떻게 보면 놀이처럼 영화를 재관람하는 ‘덕질’ 문화의 시초라고도 볼 수 있다.
“혼자 재관람하는 사례는 종종 있었겠지만 집단이 한 영화를 계속 관람하는 ‘N차 문화’는 ‘왕의 남자’가 처음이었어요. 팬들이 자신이 본 영화 티켓들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는 게 유행이었죠. 저도 처음엔 ‘이게 뭐지?’ 의문이 컸어요. 전례가 없었으니까요. 2005~2006년은 한국영화 전성기라 관객들이 영화 관람하는 열기가 급팽창하는 시기였는데, 그 힘으로 ‘N차 관람’ 문화가 탄생했고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 같아요. 특히 영화 속 퀴어 요소를 팬들이 많이들 좋아해줬는데, 원작엔 없던 설정이었거든요. 지금보다 더 보수적인 20년 전이었지만, 당시 ‘브로크백 마운틴’이 글로벌한 열풍이 불던 때라 ‘왕의 남자’도 자연스럽게 소구된 것 같아요. 새로운 감성이라고 느껴 더 관대하게 받아들였고요. 그런 걸 반복적으로 보고 느끼고 싶은 욕망이 N차를 부른 거고요.”

■20년이 지난 뒤, 이준익 감독에게 ‘왕의 남자’란?
지금의 이준익 감독을 있게 한 작품도 바로 ‘왕의 남자’다.
“‘감독 이준익’은 ‘왕의 남자’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어요. 일개 영화 감독이었는데 이 작품으로 이름을 날렸고 나아가 셀러브리티 대우까지 받았으니까요. 이 작품 이후 ‘스타감독’으로 불리기 시작했으니 제겐 큰 의미가 있는 영화죠. 물론 이후에 부담이 커져서 잘 만들려고 노력하다가 삐끗해서 은퇴소동까지 벌이긴 했지만, ‘소원’ ‘박열’ ‘동주’ ‘자산어보’까지 올 수 있었던 분기점이었어요. 또한 20년이 지나서도 이 작품이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왕의 남자’를 몰랐던 젊은 세대들에겐 이 영화를 각인시킬 수 있는 해가 될 수 있을 것 같고요.”
‘왕의 남자’는 각종 OTT플랫폼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