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의 개념은 어렵지 않다. 국민 개개인에게 헌법은 기본권을 지켜주는 법이다. 그런데 시민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가장 큰 힘은 공권력이다. 공권력은 국가가 국방과 경찰, 사법 등 다양한 형태로 국민에게 행사하는 힘으로 워낙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법은 공권력의 행사 범위에 대한 기준을 엄격히 정해 시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공권력을 행사해야 하는 군인들이 헌법을 잘 알고 지키면 군사 반란은 불가능해진다. 군인에게 헌법은 충성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헌법에 충성하는 군인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고 특정인과 특정 집단에 충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 군은 여러 차례 군사 반란에서 헌법 파괴 세력에게 충성했다. 이는 당시 군인 대다수가 헌법의 가치에 무지했던 탓이 크다.
윤석열 정부의 군부는 육군사관학교에서 헌법 정신과 의병 및 독립·광복군 역사 지우기에 나섰다. 육사 정신을 잘못된 과거로 회귀시킨 ‘물갈이’였다.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육사 37기)이 취임하자 육사는 2024년 초 ‘육사 정상화’라는 명목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했다. 생도들에게 헌법 정신과 계엄에 대해 가르쳤던 ‘헌법과 민주시민’ 과목도 폐지됐다. 당시 국방부는 이 수업이 윤석열 정부의 철학에 맞지 않는 것으로 간주했다.
‘헌법과 민주시민’은 문재인 정부가 육사 1학년 생도들을 대상으로 개설한 수업이었다. 육사는 ‘2018 기무사 계엄문건’ 사건 이후 이 과목을 개설했다. 해당 강의는 법 틀을 강조한 ‘헌법과 군사법’에서 나아가 시민 불복종 및 시민참여 등과 같은 상황에서 군이 해야 하는 역할과 법체계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과목이었다. ‘민주사회에서의 민군관계와 헌법정신’, ‘시민 불복종이나 운동에 있어서 군의 역할’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 과목은 육사 생도들도 시민의 일원이라는 입장에서 군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수 있는 수업으로 평가받았다. 생도들은 이 과목 수강을 통해 군대가 시민사회와 동떨어진 ‘섬’이 아닌 헌법적 가치와 질서 준수를 중시하는 시민사회의 구성체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 교과목을 충분히 수강했다면 12·3 비상계엄에 나선 군의 작전이 위헌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헌법과 민주시민’ 과목을 단순한 군사법과 형법 중심의 ‘헌법과 군사법’ 수업으로 대체했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수업이 폐지된 것이 아니라 명칭이 바뀐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헌법과 민주시민’ 과목은 올해 하반기 부활하게 됐다. 이번에는 육사뿐만 아니라 공군사관학교와 해군사관학교, 육군3사관학교, 국군간호사관학교 등 모든 군 교육기관에서 ‘헌법과 민주시민’ 강의가 필수과목(3학점)으로 개설된다. 국방부는 모든 장병과 군무원을 대상으로도 헌법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특별정신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헌법·법률상 군의 이념과 사명’, ‘군복 입은 민주시민’ 등을 주제로 한 온라인 강의는 모든 간부를 대상으로 연 1회 이수가 의무화된다.

시대를 거스른 퇴행
윤석열 군부는 헌법 정신뿐만 아니라 육사 정신을 퇴행시켰다. 문재인 정부 초기 육사 졸업식에서 신임 장교들은 ‘국민에 충성, 국가에 헌신’을 다짐했다. 과거 ‘국민’보다 ‘국가(주의)에 충성’을 먼저 앞세워 쿠데타와 독재권력을 정당화했던 선배들의 유산과 절연한다는 차원이었다. 교과 과정에 ‘독립군·광복군 전쟁사’ 과목도 생겼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독립군과 광복군은 시민들이 신분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국권 회복을 위해 자발적으로 입대한 국민의 군대였다.
육사는 2018년 3·1절에 이회영 선생과 김좌진, 홍범도, 지청천, 이범석 장군 등 의병·광복군·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 제막식을 열었다. 흉상 설치를 결정한 인물은 당시 육사 교장인 김완태 중장(육사 39기)이었다. 영관 장교 때부터 광복군과 독립군의 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육사 교과 과정에 처음으로 독립운동사를 다루도록 했다. 그러나 육사 정신을 앞장서 개혁했던 그는 육사 선배들을 포함한 보수 인사들의 갖은 비난에 공황장애 증세에 시달리는 등 고역을 치렀다.
윤석열 군부는 2023년 8월 육사 교내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등 영웅 흉상을 치우고 일본군 간도특설대 출신인 백선엽 장군의 흉상을 설치하겠다고 나섰다. 발단은 신원식 전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2022년 정기국회 국정감사 중 “소련군이 된 이분을 굳이 흉상을 세우고 육사에 만들라고 했는지 의문”이라고 한 발언이었다. 국방부는 국회 지적사항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흉상 이전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공산 세력과 싸울 간부를 양성하는 육사에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겠느냐는 지적이 있었다”는 이유를 댔다. 이는 국군의 뿌리와 이념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당장 홍범도 장군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에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레닌 시절 소련군에 가입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반발이 나왔다.
55개 독립운동단체는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홍범도 흉상 이전은) 육사 생도들로부터 독립 영웅들을 분리하려는 반헌법적이고 매국적 시도”라고 국방부를 비판했다. 나아가 “의병-독립군-광복군으로 이어진 우리 군의 자랑스러운 뿌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며 “우리 군 정통성을 무력화하기 위한 ‘친일 뉴라이트’의 흉계”라고 지적했다. 육사 출신인 이종찬 광복회장은 국방부 장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민족적 양심을 져버린 귀하는 어느 나라 국방부 장관이냐”며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면 자리에서 퇴진하는 것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군부의 헌법 정신과 의병·독립군·광복군 정신 기피는 친일파 출신 육군 창군 주역들과 그들이 세대를 이어가며 키운 후배 군 고위층들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16대 육군 참모총장 13명(연임 포함) 가운데 단 한 명을 제외한 12명 전원이 학도병을 포함한 일본군이나 만주군 출신이다. 그 영향으로 한국군은 오랫동안 일본 군국주의 유산을 모방해 국가주의와 상관에 충성해 출세를 꾀하는 잘못된 군대 문화에 길들었다. 헌법 가치에 대한 충성과 민주적 규율을 추구하는 국민의 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윤석열 군부가 육사의 독립군·광복군 역사 찾기와 ‘헌법과 민주시민’ 강의를 배척하려 한 배경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