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출신’ 장관?

2025-09-12

2015년 11월 18일, 경찰이 돌린 한 용의자 수배 전단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경찰이 수배 전단에서 용의자의 외모를 ‘노동자풍의 마른 체형’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노동자풍’이라는 표현은 그전에도 여러 차례 수배 전단에 등장했다. 경찰은 용의자가 머리와 옷차림이 허름하거나 방언 사용자일 때 주로 ‘노동자풍’이라는 용어를 썼다. 양복 차림의 깔끔한 인상을 뜻하는 ‘사업가풍’이나 ‘회사원풍’ 등과 구분되는 의미에서였다.

문제의 전단이 온라인에서 확산하자 민주노총은 경찰청에 공문을 보내 “노동자를 하찮고 남루한 존재로 규정·폄훼했다”고 항의하면서 ‘노동자풍이라는 표현을 시정해달라’고 했다. 경찰청은 11월 23일 민주노총에 “용의자를 신속히 검거하고자 했을 뿐, 노동자 폄훼 의도는 없었다”며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적극 조치하겠다”고 답했다.

‘노동자’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많은 사람이 화이트칼라 사무직 노동자 대신,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블루칼라 비사무직 노동자들을 떠올린다. 그 편견은 노동에 관한 인식을 후퇴시킨다. 경향신문이 2016년 서울 초등학생 1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노동’이라는 말에서 ‘힘듦’, ‘노예’ 등 부정적인 단어를 떠올린 학생은 69명(62.7%)에 달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취임했을 때 많은 언론이 그를 두고 ‘노동자 출신 장관’이라며 신선해 했다. 파격적이라는 반응도 잇따랐다. 김 장관이 노동자 출신인 것은 사실이다. 그는 1992년 철도기관사가 됐고, 장관에 지명됐을 때도 열차를 몰고 있었다. 철도노조 위원장을 거쳐 민주노총 위원장까지 지낸 노동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노동자 출신 장관’이라는 수식어를 볼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질문 하나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른 장관들은 ‘노동자 출신’이 아닌가?”

엄밀히 따지면 ‘노동자 출신’이 아닌 장관을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노동부의 경우, 이재갑 전 장관과 안경덕 전 장관 등은 노동부 공무원으로 오래 일했다. 그런데 공무원도 넓은 의미에서 ‘노동자’다. 김영주 전 장관은 농구선수에서 은퇴한 뒤 은행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최근 노동위원회 등은 연구자들도 노동자로 인정하는 추세다. 그렇다면 방하남 전 장관, 이정식 전 장관도 노동자 출신 장관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정식 전 장관은 연구노동자이면서 한국노총 상근노동자이기도 했다. ‘노동자 출신’이라는 수식을 꼭 블루칼라 노동자에게 한정해야만 한다면, 위장 취업이지만 엄연히 공장에서 일했던 김문수 전 장관이 있다. 이들 중에는 정치인·교수 등을 지낸 경우도 있지만, 그 사실이 ‘노동자 출신’이라는 수식을 뺄 이유는 되지 못한다. 김 장관도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김 장관의 ‘노동자 정체성’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의 현장 노동자 경험은 분명 장점이다. 다만 다른 장관들을 제쳐두고 그에게만 ‘노동자 출신 장관’이라는 수식을 붙이는 것은 어쩌면 조금 위험할 수도 있다. 그 밑바탕에는 ‘노동자=블루칼라’라는 도식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일하는 사람은 모두 노동자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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