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가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내년 1월 'AI 기본법' 전면 시행을 앞두고 '최소 규제' 기조로 방향을 선회했다. 일본과 싱가포르는 이미 유연하고 적극적인 정책 기조를 기반으로 AI 혁신을 선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저작권 규제 완화로 AI 활용 기반을 선제적으로 마련했다. 2018년 저작권법을 개정해 2019년부터 텍스트·데이터마이닝(TDM) 목적의 데이터 분석을 폭넓게 허용했다. 개정 조항은 상업·비상업 목적을 불문하고 저작권자의 사전 동의 없이 데이터 추출과 분석을 가능하게 했다.
AI 학습과 활용을 규제보다 진흥 중심으로 지원하려는 일본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반영된 것이다. 일본 문화청은 올해 초 'AI와 저작권' 해석 지침 초안을 공개해 불법 데이터 접근에 대한 주의 의무와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는 등 후속 제도 정비에도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는 2019년 국가 AI 전략을 발표한 이후 아시아 AI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3년 공개된 'AI 전략 2.0'에서는 데이터 활용, 규제 환경, 인재 양성 등 핵심 분야를 강화하며 AI 생태계 전반의 풀스택 역량 확보를 목표로 했다. 특히 정부는 AI 검증 프레임워크인 'AI 검증도구'를 도입해 기업이 규제 불확실성 없이 AI를 개발·상용화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싱가포르는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컴퓨테이셔널 데이터 분석(CDA) 예외를 신설, 상업적 텍스트·데이터마이닝(TDM)까지 허용했다. 이는 AI 학습 과정에서 핵심인 데이터 활용에 법적 안전망을 제공하며, 글로벌 기업이 안심하고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러한 정책적 우호 환경은 구글,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빅테크가 싱가포르 내 데이터 클라우드 리전을 확장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정부는 규제 최소화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최근 확정했지만, 업계가 체감할 만한 데이터 활용 해소책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산업계에서는 AI 학습 과정에서 저작물 활용 합법성 문제가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과 싱가포르는 데이터 활용을 규제하기보다 산업 진흥에 무게를 두면서 다양한 시도와 상용화를 열어주고 있다”며 “국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한국도 데이터 활용과 관련한 실질적 규제 완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명희 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