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민경 인턴기자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하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밖에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21년 "명예훼손 사건 중 다수가 사실적시형이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면서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 OECD 중 한국·일본만 형사처벌..."사실 말하면 처벌 안 한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지 않는 흐름이 일반적이다. 미국은 4개 주를 제외하고 명예훼손죄가 아예 없다. 형사 처벌이 아니라 민사 소송으로만 다룬다.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야 하고 명예훼손은 개인 간 분쟁이므로 국가 권력이 개입할 수 없다는 취지다. 다만 민사 소송액은 형사 처벌을 하는 국가에 비해 훨씬 높은 편이다.

영국은 2009년 형사 명예훼손죄를 전면 폐지했고, 2013년 명예훼손법을 통해 민사 중심의 구제 체계를 구축했다. '심각한 피해 요건'을 도입해 실질적 평판 손상이 입증되지 않으면 소송 자체를 제한했다. 영국엔 언론 대상 징벌적 손해배상 판례가 존재하지 않는다. 2013년 제정된 명예훼손법은 발행된 글이 원고 평판에 심각한 피해를 주거나 줄 가능성이 있어야 하고, 영리활동을 하는 단체의 경우 실질적 재정 손실이 발생했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 때만 인정한다.
프랑스 역시 허위사실 유포에만 형사책임을 두고, 사실 적시에 대해서는 민사적 절차를 중심으로 처리한다.
독일은 형사처벌 규정을 유지하면서도 표현의 자유와 피해자 보호 사이의 균형을 제도적으로 발전시킨 대표적 국가다. 독일 형법에는 여전히 명예훼손 조항이 존재하지만 실제 형사 처벌은 극히 드물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정치적 비판과 공적 논쟁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기능"이라며, 공인·공적 사안에 대한 발언은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는 판례를 반복적으로 내왔다.
일본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두고 있지만, 한국과 달리 공익 목적이 인정되고 진실이 증명되면 위법성이 조각된다. 일본 형법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실과 관련되고 또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을 도모하는 것이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사실 여부를 판단해 진실하다는 것을 증명한 때에는 이를 처벌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최병천 서울특별시청 민생정책보좌관에 따르면 허위정보 유통과 사실적시 명예훼손 문제가 시민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민생 현안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고의로 허위·조작 정보를 유통해 돈을 버는 행위는 민주주의를 훼손하므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며, 손해배상은 '피해액'이 아니라 '가해자가 번 이익'을 환수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며 "반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권력자·기득권을 과잉 보호해 온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법안인 측면이 있어 폐지 논의가 타당하다"고 밝혔다.
◆ UN·국제사회 "표현의 자유 위축"... 잇단 폐지 권고
국제사회도 한국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반복적으로 우려를 표명해 왔다. 유엔인권위원회는 2011년, 유엔 자유권위원회(ICCPR)는 2015년과 2023년 한국에 대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 또는 비범죄화를 권고했다. 2018년에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성폭력 피해자들이 보복성 고소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며 개정을 촉구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2021년 "명예훼손 사건 중 상당수가 사실 적시 유형으로,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하며 폐지를 권고했다.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도 2022년 보고서에서 "한국의 명예훼손죄는 공익적 발언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국내 실정상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미권은 징벌적 손해배상 등 민사적 제재가 강력하지만, 한국은 위자료 수준이 낮아 동일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국제 권고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2021년 2월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관 5대4 의견으로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다수 의견은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입법례와 달리 우리나라의 민사적 구제 방법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 효과를 확보하기 어려우므로 입법 목적을 동일하게 달성하면서도 덜 침익적인 수단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할 경우 이들 재판관 의견도 달라질 여지가 있는 셈이다.
반면 문형배·이석태·유남석·김기영 재판관은 "제3자의 고발에 따라 진실한 사실적시 표현 행위에 대해서도 형사 절차가 개시되도록 하는 '전략적 봉쇄소송' 마저 가능하게 됐고, 형사 절차에 휘말릴 가능성이 더욱 커짐에 따라 진실한 사실적시에 관한 표현의 자유는 심대하게 위축되게 됐다"며 반대 의견을 냈으나 소수에 그쳤다.
pmk145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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