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셨다. 나치 시대 독일 법관들은 합법적 절차로 제정되었다는 이유로 인종차별법에 의해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우리는 법을 형식적으로 적용하는 법실증주의가 파시스트 정권을 유지하는 도구로 악용된 뼈아픈 역사적 경험을 하였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사법 온정주의 역시 법치주의만큼이나 위험하다. 우리 법원은 음주운전·뇌물죄·산업재해 사고에 대해 벌금·집행유예 등 관용적 판결을 주로 내렸다. 음주운전으로 국회청문회에서 임명이 거부된 사례가 드물다. 뇌물죄는 인사치레로 눈감아지면서 부패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썼다. 산업현장은 사고 전 안전관리 비용보다 사고 후 처리비용이 적어 안전사고 예방 노력을 소홀히 했다.
진료기록 변조 책임 완화하자
의료인들의 경각심 느슨해져
과도한 책임 추궁도 문제지만
사고 막는 법 정비 늦춰선 안 돼

국회가 음주운전치사죄에 대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윤창호법을 제정하여 실형 선고가 늘어나자 사망 피해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김영란법을 만들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어도 처벌할 수 있게 하고, 대법원에서 뇌물죄에 대한 엄격한 양형기준표를 제시하여 수천만원 이상을 수뢰한 국회의원·경찰청장·지방자치단체장들에게 중형이 선고되면서 공직부패지수가 줄었다. 중대재해처벌법률 제정 후 안전관리의무를 위반한 책임자들에게 실형선고 비율이 높아지자 산업현장에서 생명존중원칙으로 바뀌고 있다.
이에 반해 의료사고에서는 사법 온정주의는 더 심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의료법은 진료기록위변조를 금지하고 있고, 법원은 종이진료기록 진단명을 삭제한 사건에 대하여 “병원측의 소행으로 진단명을 변조한 행위에 비추어 시술 과정에서 수술기구로 척수를 손상시킨 시술상 과실로 일응 추정된다”고 하고, 전자진료기록에 사후 검사를 한 것으로 입력시킨 사건에 대하여 “검사를 하지 않은 수정 전 기록에 비추어 사후에 수정한 진료기록 내용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여 엄격한 진료기록위변조 책임을 물었다. 이런 판결이 선고될 때 의료인들은 함부로 진료기록을 고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이 “진료기록을 변조하여 입증을 방해하는 행위를 하였더라도 법원으로서는 이를 하나의 자료로 삼아 자유로운 심증에 따라 방해자 측에게 불리한 평가를 할 수 있음에 그칠 뿐 입증책임이 전환되거나 곧바로 과실이 증명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고 선고하는 판례가 잇따르자 의료인들 사이에서는 진료기록을 조작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졌다. 또 일부 의료기관은 조직적으로 수정하고 있어 의료법이 무력화되고 있다. 다른 예로 자궁적출술 중 요관 손상 사고에 대하여 하급심에서 “고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함에도 무리하게 시술한 결과 자궁과 아무 관련이 없는 요관을 손상시킨 잘못이 있다”고 과실을 인정하였으나, 2008년 대법원에서 “요관손상이 일반적 합병증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볼 사정이 없는 한, 의료과실을 추정할 수 없다”며 과실을 부정하고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 판결 후 환자는 요관손상이 일반적 합병증의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무리하게 복강경을 조작하였다는 것을 입증하여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부인과 교수들은 전공의에게 “요관 손상에 주의하라”는 당연한 교육조차 불필요한 잔소리로 치부되고 있다.
의료법과 진료지침에 코일색전술 중 혈관파열, 위장절제술 후 문합부 누출, 입원 중 수퍼박테리아감염 등의 예방·검사·진단·치료법에 대해 상세히 기술되어 있고, 이를 지키는 것이 의료인의 법적 의무이다. 의료인이 혈관파열, 문합부누출, 병원 감염 시 진료지침에 따랐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과실이 추정되어야 함에도 일부 판결은 이를 “일반적 합병증, 통상의 손해”라며 과실추정을 부정하고 있다. 환자에게 의료인이 재량을 벗어난 위법행위로 악결과가 발생하였다는 점을 입증하도록 하는 판결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서 사실상 패소를 강요하는 것과 같아 불합리하고, 일반인의 상식에 반한다.
의료인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책임을 지울 경우 방어 진료, 과도한 검사, 진료거부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법과 진료지침을 준수하지 않았음에도 과실 추정을 할 수 없다는 사법 온정주의적 판결은,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관용적 판결이 음주 만연, 부패 공화국, 안전불감증 사회를 만들었다. 법실증주의도 위험하지만 온정주의에 빠질 때 역시 법치주의가 훼손될 수 있다. 진료지침을 따르지 않았음에도 재량이라는 이유로 면책된다면, 환자의 생명은 보장받지 못한다. 의료법에 진료지침 준수의무를, 의료분쟁조정법에 의료인의 진료지침 이행에 대한 입증책임을 명시하는 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이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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