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도구’ 떠오른 인공지능
트럼프, 3년간 가짜 영상 62회 게시
경쟁자 겨냥 영상은 최소 14번 달해
反지지 국민엔 오물 투척 등 조롱도
中 관영매체 관세 비판 비디오 공개
中대사 대변인은 MAGA펭귄 조롱도
러선 정상들 아이 묘사 애국심 부여
전문가들 “정치소통 방식 변화 방증”
표현 자유, 민주주의 위협행위 우려
“윤리적 기준·책임 소재 명확화 시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금빛 왕관을 쓴 채 시위대에 오물을 뿌리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눈 속에서 북극곰과 함께 춤을 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유럽 지도자들은 미국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 복도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트럼프 대통령을 기다린다. 모두 인공지능(AI)이 만든 가짜 영상이다.
세계는 ‘피드 위에서 보여지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연설, 회담, 정책 등 기존 방식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맞춰 유튜브, 인스타그램, 엑스(X) 등 각종 플랫폼이 새로운 전장으로 떠올랐다. 무기는 AI다. 기술의 발전으로 누구나 영상과 이미지를 손쉽게 제작할 수 있게 되면서 정치와 외교의 언어도 더 짧고 더 빠르고 더 감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재미와 풍자를 자양분 삼는 수많은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과 사회적 혼란·분열을 부추기는 가짜뉴스의 경계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윤리와 책임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성형 AI 정치 1호 주연 트럼프
12일(현지시간) 외신 등에 따르면 AI 기반의 영상과 이미지를 ‘정치적 도구’로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정책을 홍보하거나 본인을 미화할 때도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제일 활발하게 AI 영상과 이미지를 사용하는 경우는 정치적 경쟁자를 공격할 때다. 뉴욕타임스(NYT)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 게시물을 분석한 결과 트럼프 대통령이 2022년 말부터 올해 10월까지 AI가 생성한 영상이나 이미지를 최소 62회 게시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지도자와 공화당 내 경쟁자들을 겨냥하는 데는 최소 14번의 게시물을 올렸다고 짚었다.
지난달 여야가 내년 예산안 협상에 난항을 겪으며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이 임박했을 때도 그는 이틀 연속 민주당 소속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와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AI 영상을 SNS에 게재했다. 지난 7월에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수갑을 차고 교도소에 수감되는 AI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향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미국 곳곳에서 ‘노 킹스(왕은 없다)’라는 구호가 울려 퍼지자 트루스소셜에 한 크리에이터가 AI로 제작한 영상을 공유했다. 영상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왕관을 쓰고 전투기를 몰며 노 킹스 시위대에 오물을 대량으로 투척했다. 국정 운영을 비판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반성 대신 조롱과 비아냥으로 응수한 것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만 이러한 방식으로 반대 진영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조롱과 풍자의 대상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한국을 찾아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신라 천마총 금관’을 선물 받았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금관을 착용한 채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 춤을 추는 AI 영상이 급속히 퍼졌다. 이 대통령의 금관 선물이 노 킹스 시위와 맞물려 트럼프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행보를 풍자하는 내용의 밈으로 소비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롱성 공격에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 인사들은 불쾌함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노 킹스 시위대에 오물을 떨어뜨리는 AI 영상을 게재한 것을 겨냥해 “기괴하다”, “야유할 가치조차 없다”고 맹폭했다. 셧다운 직전 조롱성 AI 영상의 주인공이 된 슈머 원내대표는 “다섯 살짜리가 할 법한 일이지 대통령이 할 일은 아니다”라며 “유치하다”고 일갈했다. 제프리스 원내대표도 “역겨운 영상”이라고 날을 세웠다.

◆뿔난 펭귄에 아기 푸틴… 선전 효과
중국과 러시아는 국내 정치를 넘어 외교 영역에서 AI 제작 영상·이미지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 CGTN은 지난 4월 AI 영상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비판하는 2분42초짜리 분량의 뮤직비디오를 엑스에 공개했다. 가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관세가 평범한 미국인의 삶에 고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내용이다. 비슷한 시기 류펑위 주미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AI가 생성한 ‘MAGA(Make America Go Away·미국을 사라지게)’라는 문구가 적힌 모자를 쓴 펭귄 이미지를 공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부과한 국가 중에 사람이 살지 않고 펭귄만 사는 남극 근처 허드 맥도널드 제도가 포함됐다는 것을 조롱하려는 의도다.
러시아의 한 매체는 지난 8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미국을 찾은 유럽 지도자들이 백악관 복도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는 AI 이미지를 마치 사실인 양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여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을 해결하고자 각국 정상들을 잇달아 만났다. 때맞춰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썰매를 타고 춤을 추는 AI 영상이 SNS에 확산했다. 가짜 영상이라는 것을 알아도 보는 이들의 인식 속에 무언의 확신을 남길 만큼의 효과는 충분하다. 이로 인해 러시아 매체의 보도에 특정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더해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을 아기 모습으로 만든 ‘샌드핏’이라는 유아용 AI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나섰다. 러시아의 선전 애니메이션 제작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가 주도했으며 푸틴 대통령을 포함해 트럼프 대통령,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마크롱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을 아이로 묘사한 캐릭터가 나온다. 제작진은 애니메이션의 목적이 “유아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애국심을 심어주고 지정학 상황을 가르치는 것에 있다”고 설명했다. 호주 모나시대학의 러시아 선전 전문가 알라스데어 맥컬럼 박사는 영국 매체 더 선과의 인터뷰에서 “걷기도 전인 유아를 가능한 한 일찍 세뇌하려는 의도”라고 꼬집었다.

◆애매한 경계, 윤리·책임 기준 세워야
광속으로 발전하는 AI 기술은 SNS와 결합하며 여론전의 속도와 확산력을 키웠다. 풍자와 조롱이 섞인 짧고 직관적인 영상, 감정에 호소하는 이미지 한 장은 순식간에 국경을 넘나들고 웃음으로 포장된 정치 메시지는 전통적인 외교 수사보다 빠르고 강하게 퍼진다. AI가 현대 정치 선전의 새로운 도구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효율성 측면에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AI의 등장으로 정치적 소통 방식도 ‘완전한 변화’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케이시 마이어스 버지니아공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AI 기반의 영상은 정적인 이미지보다 큰 추진력을 갖고 있으며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이다. 풍자와 비방의 구분은 모호해졌고 진실보다 감정이 앞서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진실을 은폐하거나 잠식하게 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AI 기술을 악용하는 시도에는 어떤 관용도 있어서는 안 되며 윤리적 책임 기준을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AI 제작 영상과 이미지의 허용 범위가 모호해지는 지점은 풍자 영역”이라며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풍자가 강력한 선거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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