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현지 시간) 오후 7시 미국 뉴욕 맨해튼 카네기홀 앞. 뉴욕 시민들이 영상 10도 안팎의 이른 추위에도 한국인 공연자들의 얼굴이 또렷이 새겨진 포스터 앞에 삼삼오오 모여 줄을 섰다. 수십 년 전만 해도 ‘클래식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온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사상 첫 카네기홀 초청 공연을 관람하기 위한 인파였다. 뉴요커들은 전 세계 연주자들이 ‘꿈의 무대’라고 부르는 카네기홀을 1~2시간 만에 가득 메우고 서울시향의 열정적인 공연에 2시간 여 동안 오감을 집중했다. 관객들은 관현악곡 ‘인페르노’의 영화 사운드트랙(OST) 같은 웅장한 사운드에 숨을 죽이고 악기로 말을 하는 듯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의 솔로 독주에 넋을 잃었다. 각 연주가 끝날 때마다 쏟아지는 열광적인 기립 박수가 ‘K클래식’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하게 했다. 카네기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인페르노의 정재일 작곡가는 “초연은 서울에서 했지만 미국에서 연주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뿌듯해 했다.

이날 서울시향은 카네기홀의 주 연주홀인 스턴 오디토리엄에서 인페르노와 펠릭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을 연달아 공연했다. 국내 교향악단(오케스트라)이 카네기홀의 기획 공연 시리즈에 정식으로 초청받아 연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휘봉은 네덜란드 출신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잡았다. 츠베덴 감독은 지난해 초 서울시향에 합류하기 전까지 뉴욕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츠베덴 감독은 이날 정렬적인 몸짓으로 단원들의 빈틈 없고 조화로운 선율을 이끌었다.
츠베덴 감독은 연주를 앞두고 “서울시향이 카네기홀에 초청받은 것은 교향악단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이고 음악감독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카네기홀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장 중 하나로 그 안에는 역사적인 마법이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인페르노는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정 작곡가의 첫 관현악곡이다. 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몽골 제국의 황제 쿠빌라이 칸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영감을 받아 인간이 스스로 만드는 지옥의 풍경을 음악으로 형상화했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김봄소리와 협연으로 진행됐다. 1845년 초연된 이 곡은 낭만주의 시대가 낳은 가장 사랑받는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꼽힌다. 네덜란드 레지덴티 교향악단의 상주 연주자로 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김봄소리는 서울시향 연주자들의 검은 복장과 구분되는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 나와 신들린 연주를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무대의 대단원은 러시아 낭만주의 교향곡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제2번이 장식했다.
정재왈 서울시향 대표는 “카네기홀에서 한국 신진 작곡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젊고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과 수준 높은 연주를 선보일 수 있게 돼 매우 뜻깊다”며 “이번 미국 공연이 K클래식의 글로벌화를 상징하는 무대이자 전 세계 한인들의 가슴에 깊은 자부심으로 남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서울시향은 29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미국 오클라호마 맥나이트센터에서 순회 공연을 이어간다. 1일에는 교향악단과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협연한다. 서울시향이 대규모 해외 순회 공연에 나선 것은 2022년 유럽 이후 3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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