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창] 은퇴의 출발, 돈을 쓰는 법을 배워야

2025-11-11

우리는 평생 동안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직장이라는 안정적인 소득원이 사라지는 순간, 즉 은퇴 이후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이다. 돈을 쓰는 방식이 곧 남은 인생의 질과 평안을 결정짓는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둔 많은 이들이 공통으로 품는 가장 큰 두려움은 “내가 모은 돈이 과연 평생 동안 버텨줄까”라는 질문이다. 이 불안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은퇴 이후 소비가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고민에서 비롯된다.

이 물음에 처음으로 과학적이고 명쾌한 답을 제시한 사람이 있다. 미국의 금융 전문가 윌리엄 벵겐이다. 그는 1994년 발표한 논문을 통해 단순하지만 혁명적인 통찰을 내놓았다. 벵겐은 1926년 이후의 미국 주식과 채권 데이터를 장기적으로 분석하고,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은퇴자들이 자산 고갈의 불안을 덜 수 있는 ‘안전 경계선’을 찾아냈다. 그것이 바로 ‘4%룰(The 4% Rule)’이다.

4%룰의 핵심은 단순하다. 은퇴 첫해에 모아둔 전체 자산의 4%를 인출해 생활비로 쓰고 이후에는 매년 물가상승률만큼 인출액을 늘리는 방식이다. 벵겐의 연구에 따르면 이 원칙을 따르면 은퇴 후 최소 30년간 자산이 고갈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4%룰이 곧바로 은퇴 설계의 ‘바이블’로 자리 잡은 이유는 명확하다. 4%룰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 위한 공식이 아니라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은퇴자에게 심리적 확신을 제공하는 ‘마음의 안전선’에 가깝다. 다시 말해, 4%룰은 돈을 더 버는 법이 아니라 모아둔 돈을 오래도록 안전하게 쓰는 방법에 관한 과학적 원칙이다.

은퇴 이후의 삶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내가 얼마나 오래 살지, 금융 시장에 어떤 위기가 닥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우리는 ‘최적의 은퇴 시나리오’를 예측하려 애쓰지만 벵겐은 이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정확히 틀리는 것보다 대체로 맞는 편이 낫다.” 이 한 문장은 은퇴 설계의 본질을 꿰뚫는다. 성공적인 은퇴 설계는 정확한 예측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생활비를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데 있다. ‘감’에 의존해 불안하게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4%룰’이라는 구조적 원칙 위에서 안정적으로 소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은퇴 준비의 진정한 출발점이며 우리가 배워야 할 ‘돈을 오래 쓰는 기술’이다.

은퇴를 ‘저축의 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은퇴는 ‘소비 전략’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하는 또 다른 경제 생활의 시작이다. 4%룰은 막연한 불안을 걷어내고, 지속 가능한 소비의 구조를 세우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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