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복지자본주의, 금융과 복지의 결합

2025-11-10

주식, 코인과 같은 투자에 온통 사람들의 마음이 쏠려 있다. 국정과제는 물론이고 간간이 나오는 대통령의 말을 들으면 정부 정책에서도 금융시장과 투자가 갖는 위상이 다른 어느 것보다 높다. 많은 사람들이 금융시장에 미래가 있다고 여기고 ‘다 이루어질지니’ 하는 기대로 들떠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끊임없이 팽창해야 굴러갈 수 있는 자본주의 속성상, 의도적으로 거품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 새로운 위기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 나아가 금융 부문의 주도권이 뚜렷해질수록 자산 소유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의 격차는 더욱 커져, 새로운 차원의 불평등 세상이 펼쳐질 것이란 우려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노동소득을 아끼거나 빚을 내 투자하는 개미들을 자산 소유자라 말하기는 어렵다. 무산자에 가까운 이들은 그 격차를 예감하고 자산 소유자에 편입되기 위해 부지런히 애쓰는 것일 터이다. 세대를 불문한 투자 열풍에 한국 사회에서는 10~20대부터 노동자가 되기 이전에 이미 투자자가 되어버리는 조기 대중투자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잘 들여다보면 이런 금융의 팽창은 복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복지는 자본의 이윤 확보를 위한 특별한 재료이다. 국가가 재정을 대는 복지시장은 계속 커지는, 퇴출될 가능성이 별로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연금, 보건의료, 노인돌봄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금융자본은 노인요양시설 비즈니스에 진출했을 뿐 아니라 요양시설에서 보험상품을 팔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20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 금융과 복지시장 결합의 핵심은 연금이었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에서는 사연금이 아닌 국민연금이 그 중심에 있다. 국민연금은 제도 수립 이래 주식시장 등에 끊임없이 유동성을 공급했다. 그 원천은 일해서 버는 소득에서 나오는 보험료였다. 올해 국민연금이 높은 투자수익을 올려 기금평가액이 1400조원을 넘겼다고 하는데, 이쯤이면 누군가는 금융과 복지의 결합이 모두에게 좋은 것 아니냐고 할 법하다.

그러나 연기금은 노후보장의 안정성을 높이는 수단임에도, 그 자체가 목적으로 여겨지곤 한다. 작년 국민연금 노령연금액은 평균 65만원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낮고 노인빈곤율은 약 40%에 이른다. 그럼에도 연기금 몸집을 불리는 것이 소득보장보다 우선시되곤 한다. 2025년 연금개혁도 그러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내년부터 보험료가 인상될 것이므로 연기금의 금융시장 행위자로서의 역할은 당분간 더 커질 것이다. 400조원을 훌쩍 넘어버린, 국민연금보다 적립액이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퇴직연금도 마찬가지이다.

고령화로 연금 지출이 커지면 무작정 보험료만 올릴 수 없다. GDP의 절반에 이른 연기금은 미래에 점차 연금 지출에 투입돼 줄어드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위탁투자 등으로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시장 팽창을 통해 이득을 보는 금융기업들과 대중투자자로 거듭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이 미래 금융시장에서 연기금의 역할 감소를 수용할 것인지 의문스럽다. 미래 금융자본과 자산 소유자들은 금융시장에 투자된 연기금 규모를 줄이는 것은 불가하니 지출을 줄이라고, 즉 노후보장 수준을 줄이라고 압박하지 않을까?

새로운 불평등이 예견되고, 노동의 안정성보다 주식 가치가 우선시되는 상황에서 불안한 노후에 대비하는 안전망으로서 국민연금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강한 재분배 효과를 가지고 생애 마지막까지 정해진 액수를 보장하는 제도이기에 그렇다. 21세기 중반으로 나아가는 지금, 어느 때보다 끈끈해지고 있는 복지와 금융의 결합은 우리를 복지와 금융투자의 딜레마라는 덫으로 걸어 들어가게 만들고 있다.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나은 해법은 분명 존재하지만 이윤을 복지에 앞세우는 우리 시대 복지자본주의는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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