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에리언 FT 칼럼
주거·교육·의료 비용 구조적 상승
저물가에 가려졌던 문제 수면 위로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미국 경제가 인플레이션 상승이 아니라 소득 불안에서 초래되는 '구매력 위기(affordability crisis)'를 맞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와튼 스쿨 교수 겸 알리안츠 수석 경제 보좌관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을 통해 월가와 미국 정부가 가계의 구매력 압박에 주목할 때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구매력 위기는 물가 상승 뿐 아니라 소득 정체가 핵심 원인이고, 특히 저소득 가구의 임금 상승이 둔화되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 지고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주거비와 교육비, 의료비가 만성적으로 상승 곡선을 그렸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전 오랜 저물가-저금리에 가려져 있다가 2021~2022년 물가 폭등에 '급성' 위기로 부각됐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고용 불안이 가세하면서 미국인의 구매력 상실이 현실적인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엘-에리언은 강조한다.
최근 뉴욕 시장 선거의 결과는 구매력 압박이 대중들의 삶 속에 현실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단면으로 해석된다.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이 이를 물가 상승에서 원인을 찾지만 실상은 소득에 뿌리를 둔 사안이라는 것이 엘-에리언의 진단이다.
물론 2021-22년의 인플레이션 급등이 식료품과 공과금 같은 필수 항목의 비용을 고통의 원천으로 만들었다. 정치인들에게 생활비와 싸움은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 가장 명료한 구호가 됐고, 정부 지출과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 기업의 탐욕 등 비난의 대상이 다수라는 사실은 정치 쟁점화에 더욱 불을 당겼다.
유권자들의 분노는 인플레이션에 대해 그들이 듣는 것과 기대하는 것 사이의 괴리로 인해 더욱 폭발했다. 정치권과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상승률이 둔화되고 있다는 데 의미를 실었지만 민초들이 원하는 것은 물가 자체의 하락이었다.
하지만 구매력의 척도로 물가에 초점을 두는 것은 상황을 정확하게 그리고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엘-에리언은 주장한다.
정작 중요한 요소인 소득을 간과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당장 더 큰 압박을 받는 부분은 물가가 아니라 바로 소득이라는 지적이다. 너무 많은 가계의 재정적 기반이 위태로운 상태라는 진단이다.
구매력 위기는 최근에 불거진 문제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이전 수십 년 동안 위기가 전개되고 있었지만 저물가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면서 느리게 진행되는 구조적 문제였다는 것.
특히 주택과 교육, 의료 등 중산층 생활의 핵심 요소에 해당하는 비용이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이제 위험 수위를 향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팬데믹 사태 이후 물가 급등과 이에 따른 구매력 타격은 첫째로 정부의 소득 이전, 둘째로 저소득 가구를 중심으로 한 임금 인상으로 상쇄됐다.
하지만 소득 증가율의 둔화와 보다 취약한 저소득 가구의 재정에 관한 데이터에서 드러나듯 이러한 소득 부양은 사라지는 실정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엇보다 에너지와 의약품, 주택담보대출의 비용 절감을 보장하는 데 정책의 우선점을 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최근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가 보고한 바와 같이 직장에서 AI의 영향과 관련된 불안과 해고 증가로 소득 측면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구매력은 단순히 실질적 지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지된 안정성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가계가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처럼 뒤처질 위험을 감수하면서 더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느낄 때 특히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경제적 불안의 체감이 긍정적인 거시경제 헤드라인을 압도하는 이른바 바이브세션(vibecession)은 바이든 행정부 당시부터 문제가 됐다.
가계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판단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오늘날 불균등한 경제는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크게 조성한다.
이는 상향 이동의 약속 위에 세워진 암묵적 사회 계약을 훼손한다고 엘-에리언은 지적한다. 또 사회가 집단적인 불안감에 빠질 때 정치 기득권과 기업들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확산될 수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구매력 위기는 단순히 인플레이션을 3%에서 2%로 낮추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엘-에리언은 주장한다.
근본적인 해법은 지속 가능하고, 포괄적이며, 무엇보다 미래 지향적인 소득 측면의 개선이라는 얘기다.
아울러 인프라 투자와 규제 완화, 여기에 AI의 인력 대체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및 기업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shhwa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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