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얇은 은하, 두꺼운 은하, 놀라운 은하

2025-09-02

[비즈한국] 애니메이션 ‘천원돌파 그렌라간’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은하를 넘어 은하단, 우주 전체에 맞먹는 거대한 로봇들이 결투를 벌이는데, 은하를 마치 표창처럼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은하는 아예 종잇장처럼 얇은 원반으로 묘사되는데 심지어 은하가 다른 은하에 얇게 꽂히기까지 한다. 은하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로서 정말 충격 그 자체인 장면이다.

은하가 무슨 레코드판도 아니고 이렇게 얇을 리가 있을까. 그런데 최근 제임스 웹이 관측한 은하들의 모습을 보니, 애니메이션의 묘사가 아예 틀린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이 관측한 은하들 중에서 아주 얇은 원반을 가진 은하 111개를 골라냈다. 이들은 지구에서 봤을 때 옆으로 누운(edge-on) 방향으로 놓여 있어서, 둥글게 휘감긴 나선팔 대신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본 얇은 모양으로 보인다. 우리가 우리 은하 안에서 얇은 은하수 단면을 바라보듯, 수억 수십억 광년 거리에 놓인 먼 은하들의 은하수를 본 셈이다.

그런데 이 얇은 원반 은하들은 놀라운 경향을 보인다. 먼 거리의 은하들에서는 보이지 않던 구조가, 가까운 우주로 올수록 새롭게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 발견은 우리 은하를 비롯해 얇은 원반을 거느린 은하들의 탄생에 대한 놀라운 실마리를 품고 있다.

사실 우리 은하 원반은 하나가 아니다. 얇은 원반(Thin Disk)과 두꺼운 원반(Thick Disk)이 공존한다. 은하수 한가운데를 이루는 얇은 원반은 두께가 1000광년 정도다. 주로 태양처럼 비교적 최근에 태어난 어린 별들로 이루어졌고, 산소와 탄소와 같은 무거운 원소 함량이 높다. 두꺼운 원반은 두께가 3000광년에 이르는데, 훨씬 더 오래전에 태어난 나이 많은 별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래서 금속 함량이 훨씬 낮다. 별들이 폭발하면서 남긴 무거운 원소의 양이 적기 때문이다.

흔히 원반 은하라고 하면 얇은 원반만 떠올리지만, 우주에 존재하는 은하 원반의 3분의 2 이상이 두꺼운 원반도 함께 갖고 있다. 특히 은하 원반의 두께, 규모에 따라 각 원반을 이루는 별의 세대와 원소 함량이 뚜렷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두껍고 얇은 은하 원반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각 원반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어째서 이렇게 깔끔하게 구분될 수 있는지는 은하 형성 과정을 연구하는 천문학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두껍고 얇은 은하 원반이 각각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가설이 있었다. 우선 첫 번째는 두꺼운 원반이 먼저 만들어진 다음 나중에 얇은 원반이 만들어진다는 가설이다. 아주 먼 옛날, 크고 작은 왜소은하가 뒤섞이고 반죽되는 과정에서 가스 물질이 빠르게 가속되고 뜨겁게 가열된다. 그래서 초기의 은하 원반은 두껍게 퍼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꺼운 은하 원반 안에서 하나둘 새로운 별이 탄생하기 시작한다. 점차 많은 별이 만들어지면 새롭게 만들어진 별 원반의 중력 덕분에 위아래로 퍼져 있던 두꺼운 원반이 점차 잠잠해지고 모여들면서 은하 원반 두께가 얇아진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나면 두꺼운 원반 안에 얇은 원반이 만들어질 것이란 가설이다.

두 번째 가설은 반대다. 얇은 원반이 먼저 만들어지고 나중에 두꺼운 원반이 만들어진다는 가설이다. 맨 처음에는 얇은 원반에서 별들이 태어난다고 가정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의 다른 이웃 은하와 상호작용을 겪고, 원반에서 나선팔과 막대 구조가 자라나는 등 다양한 역학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러면서 원반 평면에 얇게 가라앉아있던 은하 원반의 별과 가스 물질이 점차 원반 위아래로 퍼지게 되어 두꺼운 원반을 이루게 된다는 가설이다.

흥미롭게도 두꺼운 원반과 얇은 원반이 공존하는 똑같은 은하를 두고 두 가설은 정반대의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둘 중 무엇이 맞는지는 최근까지도 명확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제임스 웹 관측 결과로 인해 둘 중 무엇이 정답에 가까운지가 명확해졌다.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이 관측한 우주의 사진 속에서 은하 원반을 얇게 볼 수 있는(edge-on) 옆으로 누운 모양의 은하 111개를 선별했다. 이번 관측은 최대 100억 년 전의 과거 우주까지 거슬러간다. 가장 먼 은하는 우주가 탄생하고 38억 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의 모습을 간직한다. 천문학자들은 각 은하의 원반을 옆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구분해 두꺼운 원반만 갖고 있는 경우, 두꺼운 원반과 얇은 원반을 함께 갖고 있는 경우로 나눴다. 그러자 놀라운 경향이 드러났다.

먼 우주의 은하들에선 얇은 원반이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흐릿하게 퍼진 두꺼운 원반만 갖고 있다. 반면 더 가까운, 최근의 우주로 가면서 은하들이 얇은 원반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명확한 상관관계는 먼 과거 은하가 처음 형성되었을 때에는 두꺼운 원반만 갖고 있다가,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은하들이 얇은 원반을 새롭게 형성하고 이중 원반을 갖게 된다는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즉, 두꺼운 원반과 얇은 원반의 형성 과정을 설명했던 두 가지 가설 중에서 두꺼운 원반 먼저, 얇은 원반을 나중 순서로 설명한 가설이 정답이라는 뜻이다.

은하의 전체 별 질량과 각 은하에서 원반이 차지하는 질량을 직접 비교한 위 그래프를 보면 더 명확하다. 그래프에서 주황색 점은 두꺼운 원반이 자라나는 과정을 보여주고, 하늘색 점은 얇은 원반이 자라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모든 원반이 은하가 무거워지면서 함께 자라나는 경향을 보이는데, 특히 주황색 선에 비해 하늘색 선이 더 가파르게 올라간다. 먼저 만들어진 두꺼운 원반에 비해, 나중에 만들어지는 얇은 원반의 성장이 더 빠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은하들의 질량에 따라서도 흥미로운 차이가 드러난다. 무거운 은하일수록 얇은 원반을 더 일찍 만들기 시작한다. 두꺼운 원반만 갖고 있던 은하들이 얇은 원반을 함께 갖추기 시작하는 시점을 비교해보면, 질량이 무거운 은하들은 80억 년 전에 이중 원반으로 전환하기 시작한 반면 더 가벼운 은하들은 40억 년 전에서야 전환이 시작됐다. 질량이 가벼운 은하들은 무거운 은하들에 비해 30억~40억 년이 더 지나서야 뒤늦게 얇은 원반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 원반이 따로 만들어지는 별개의 구조가 아니라, 함께 공존하면서 성장하는 구조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단순하게 두꺼운 원반이 다 만들어진 다음에 얇은 원반만 따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본격적인 탄생 시점에만 차이가 있을 뿐 두껍고 얇은 두 원반 모두 공존하며 함께 성장해나가는 공진화를 한다는 것이다. 얇은 원반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꺼운 원반 역시 성장을 멈추지 않고 은하 자체가 무거워짐에 따라 계속 더 두껍고 무겁게 성장해나간다.

이번 발견을 더 명확히 분석하기 위해, 이후 천문학자들은 다시 은하들은 ALMA 전파 망원경으로 추가 분석했다. 각 은하 원반 속 가스 물질이 얼마나 빠르게 요동치고 있는지 움직임을 분석했고, 또 각 은하 원반에 무거운 원소 함량이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했다. 실제로 초기 우주에 존재하는 두꺼운 원반을 두른 은하들에서 가스 물질은 더 빠르게 요동친다. 초기 우주의 두꺼운 원반 속 가스 물질의 난류가 아직 잠잠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초기 우주에서 은하 원반은 아직 빠르게 뒤섞인 가스 입자로 가득 차 있었다. 가스 물질의 난류가 가득했고, 빠르게 움직이는 입자들로 채워진 은하 원반은 뜨거웠다. 그래서 초기에 은하 원반은 두꺼웠다. 난류로 가득 찬 두꺼운 원반 속에서 1세대 별이 탄생하고, 초기 원반이 발달하면서 원반의 난류는 잦아들었다. 원반이 고요해지면서, 뒤늦게 더 어리고 젊은 별들이 탄생했고, 이들이 남긴 무거운 금속 원소가 얇은 원반을 가득 채워나갔다. 반면 오래전부터 살아남았던 금속 함량이 낮은 나이 많은 별들은 계속 두꺼운 원반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번 분석에 따르면 우리 은하의 얇은 원반은 지금으로부터 약 80억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이 수치는 우리 은하 얇은 원반 속 별들의 스펙트럼으로 추정한 별들의 화학적 연령과 잘 들어맞는다.

은하를 단위로 우주 전체의 진화를 바라보는 은하 천문학에서 ‘우리 은하는 독특한 세계일까’라는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은하가 다른 은하들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범한 진화 과정으로 만들어진 세계라면 우리가 바라보는 우주의 풍경이 우주 전체를 잘 대변할 거라 믿을 수 있다. 반면 우리가 다른 은하들과 다른 독특한 역사를 경험했다면 우리가 바라보는 주변 우주 풍경이 우주 전체의 평균적인 특징을 잘 대변한다고 믿기 어렵게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평생 우리 은하 안에 갇힌 채 우리 은하의 실제 모습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살아갈 확률이 높다. 우리 은하 너머 우주 전체를 마음대로 누비는 존재가 될 수 없는 한, 우리에게 주어진 주변 우주의 풍경이 정말 우주 전체의 평균적인 모습을 잘 대변하고 있는가는 현대 우주론, 천문학의 근간 자체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하고도 민감한 질문이다. 그리고 이번 발견은 다행히 우리 은하가 우주의 수많은 원반 은하들과 비슷한 탄생의 역사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주의 수많은 은하들은 중심에 얇고 선명한 시냇물이 흘러가고, 또 그 양옆에 더 넓게 퍼진 두꺼운 강줄기가 흘러가는 은하수를 품고 있다. 그리고 우리도 그 중 하나다.

참고

https://science.nasa.gov/missions/webb/nasas-webb-digs-into-structural-origins-of-disk-galaxies/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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