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파엘 나달(스페인)은 지난해 5월 낯선 패배를 겅험했다. 자신이 14차례나 우승한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 프랑스오픈에서 알렉산더 츠베레프(독일)에게 1회전에 져 탈락했다. 나달이 프랑스오픈 1회전에서 탈락한 것은 프로 데뷔 이후 첫 경험이었다.
오랜 부상에서 회복한 뒤 명예회복을 별렀던 무대에서 쓸쓸히 짐을 싼 나달은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프랑스오픈이 될지 모르는 출전을 마무리하며 “오늘이 은퇴를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나달은 1년 뒤인 25일 다시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스의 센터코트 필리프-샤트리에에 섰다. 이번에는 운동복이 아닌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다. 프랑스오픈에서 승률 96.6%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긴 ‘킹 오프 클레이’ 나달이 롤랑가로스에서 진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지난해 11월 국가대항전 데이비스컵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물러난 나달은 이날 프랑스오픈의 클레이코트를 상징하는 적갈색 티셔츠를 입은 1만5000여 관중 앞에 섰다. 관중들 사이에서는 그를 우상이라 밝힌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 이가 시비옹테크(폴란드) 등 남녀 현역 톱클래스 선수들도 포착됐다.

나달이 도착하기 전부터 경기장은 “라파! 라파! 라파!”라는 함성으로 채워졌다. 이 코트에서 만큼은 누구보다 냉정했던 나달이지만 기립박수가 나오기 시작하는 무대로 나서면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나달은 “20여년간 뛴 이 코트에서 즐거웠고, 고통받았고, 이겼고, 졌고, 많은 감정을 느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코트라는 점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나달은 2001년 프로 데뷔한 뒤 24년 동안 코트를 누비면서 22번의 메이저 대회 단식 타이틀(2위)을 거머쥐었다. 통산 92승을 올렸는데, 81연승 등 클레이코트에서 압도적 최강자 지위를 유지했다.
특히 프랑스오픈에서 독보적인 기록을 쌓았다. 10대에 첫 우승을 프랑스오픈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20대에만 8차례 우승으로 기존 대회 최다 우승자 비욘 보그(6승·스웨덴)를 뛰어 넘었다. 116경기를 치르며 단 4경기만 패했다.
나달이 롤랑가로스를 작별하는 날, 2000년대 남자 테니스를 함께 지배한 ‘빅4’ 로저 페더러(스위스), 앤디 머리(영국),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까 한 자리에 모였다. 나달은 “내 커리어에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 셋이 이 자리에 함께 해준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우린 스포츠 역사상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지만, 좋은 동료이자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이 세상에는 큰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특별한 감사를 전했다.
나달은 이어 주최 측으로부터 ‘레전드 트로피’를 받았다. 이어 필리프-샤트리에 코트의 네트 옆에는 나달의 발자국이 담긴 명판도 공개됐다. 나달은 “이보다 감동적인 날은 상상하지 못했다”며 “사실 나는 이런 일로 주목받는 일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오늘 내 감정 때문에 힘들었지만 솔직히 감동적이고 즐거웠다”고 말했다.

나달은 또 “롤랑가로스에서 같은 장소에서 메이저 14승을 달성하는 건 언젠가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최소 30년을 걸릴 것”이라고 웃으며 자신의 기록에 자부심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