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영기 기자) 임대인이 “은행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지급하겠다”며 임차인에게 전출을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엄정숙 변호사가 유의할 점을 환기시켰다.
전출에 응하는 순간 임차인은 대항력을 상실해 경매 등 집행 절차에서 사실상 후순위 채권자로 밀리며, 전세금 회수 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진다는 것.
2024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전세금반환소송’ 본안소송 접수는 2023년 7,789건으로 전년(3,720건) 대비 약 109.4% 늘었다.
같은 해 ‘명도소송’ 접수는 35,593건으로 전년(29,910건) 대비 약 19.0% 증가했다. 전세금 반환과 점유 회복을 둘러싼 분쟁이 동시에 확대되는 흐름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이 주택 인도와 주민등록을 갖추면 제3자에 대한 대항력이 발생한다. 확정일자 등 요건을 충족하면 경매에서 우선변제권으로 보증금 회수 순서가 앞선다.
전출은 이 요건을 스스로 해제하는 결과를 낳으며, 새로운 담보권이나 압류가 설정될 경우 임차인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엄정숙 변호사는 “임대인이 ‘은행 요구사항’이라며 전출을 종용하는 건 임차인의 법적 지위를 약화시켜 지급을 미루거나 회피하려는 전형적 수법”이라며 “전출에 응하면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동시에 잃어 후순위로 전락하므로 절대 응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안으로는 임차권등기명령이 제시된다. 임차권등기를 해두면 이사하더라도 종전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유지할 수 있어, 이주 필요와 권리 보전 사이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장치가 된다.
임대인의 대출 실행 사유가 진정한지와 무관하게, 임차인은 자신의 담보적 지위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 원칙이다.
법도 전세금반환소송센터의 내부통계에 따르면, 관리사례 180건(2013~2021년) 기준 전세금 반환 소송의 소요기간 중앙값은 약 3개월, 전세금액 중앙값은 약 95,000,000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표본에서 경매신청 병행 비율은 약 21.7%였다.
엄 변호사는 “전출 요구를 받았다면 문자·대화 녹취 등 정황을 즉시 보존하고, 임차권등기명령 가능성과 집행 전략을 전문가와 점검해야 한다”며 “은행·중개인·임대인 누구의 요청이든 대항력 상실을 전제로 한 조건은 협의 대상이 아니라 배제 대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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