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가장 멋지게 쓰고 간 세실 로즈

2025-08-20

세실 로즈(1853~1902·사진)는 영국에서 목사의 아들로 출생했으나 선천성 천식을 앓아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뒤 습기가 적은 남아프리카로 이주했다. 그는 열혈한 식민지주의자로서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많은 돈을 벌어 한 국가를 건설해 자기 이름을 따 로디지아라 짓고 로즈대학을 설립해 국가에 헌납했다. 면적이 39만㎢로 남한의 4배다. 지금은 그 나라를 짐바브웨라 부른다.

죽을 때 유산 600만 파운드로 로즈장학재단을 만들어 영연방과 영연방이었던 국가 및 독일에서 뛰어난 젊은이를 전액 장학생으로 뽑아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에 유학시키라는 유언을 남기고 그 경영을 로스차일드 은행에 맡겼다. 1977년까지 여학생은 응모 자격이 없었다. 세계 각지에 뽑혀 온 이 수재들을 로즈 스칼라라 불렀다.

지금은 다소 바뀌었지만 1950년대까지만 해도 로즈 스칼라에게는 두 가지의 관행이 있었다. 첫째로 그들은 의도적으로 박사학위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기들의 논문을 심사할 만한 실력의 심사위원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논문을 쓸 때 인용문이나 각주를 달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논문이 창작이지 어느 선학의 글을 참고했거나 인용하지 않았다는 오만함을 그렇게 표현했다. 실제로 딘 러스크의 옥스퍼드대학 졸업 논문에는 각주나 인용문이 전혀 없음에도 최우수상을 받았다.

세실 로즈를 극찬하는 역사학자들은 그를 “남아프리카의 워싱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막스 베버는 세실 로즈가 현대사에서 가장 멋지게 살다 간 부호라고 칭송한다. 그러나 로즈에게는 검은 역사도 있다. 로즈 스칼라들은 오만했고, 마치 자기들은 역사를 창조하고자 태어난 인물들처럼 행세함으로써 인연을 맺은 국가에 상처를 주었다. 한국을 분할한 주인공인 조지 링컨, 본스틸, 그리고 러스크가 모두 로즈 스칼라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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