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겸 배우 엄정화(56)가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를 솔직히 밝혔다. 그는 “출산 후 무대에 서는 건 상상조차 어려웠던 시대였다”며 여성 연예인으로서 마주했던 현실적 제약을 회상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엄정화는 결혼 대신 무대를 선택했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온 여정은 지금 세대에 용기와 공감을 전한다.
12일 유튜브 채널 ‘SPNS TV’에는 ‘대한민국 LGBTQ씬의 영원한 아이콘’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와 있다. 엄정화가 게스트로 출연해 인생사를 나눈 해당 영상은 8월21일 처음 공개됐다.
영상에서 엄정화는 ‘나이’에 대한 화두를 이어가며 “내가 30대 때는 지금 내가 이렇게 활동할 수 있을 줄 상상할 수 없었다”며 “사실 내가 결혼 안 한 이유도 그런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결혼을 하게 되면 여배우로서, 여가수로서 무대에 올라가는 데 한계가 생기는 느낌이었다”며 “배우로서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엄마 역할만 해야 되고, 그때는 현역인 가수가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무대를 오른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요즘은 가능하지 않나. 그때는 나이에 대해 너무 가혹했고, 어느 나이를 넘으면 (연예계에서) 없어지는 거다”라며 씁쓸함을 드러냈다. 또 “20대 후반부터 기사마다 나이가 따라붙었다. 나이를 생각 안 하고 싶고 계속해서 도전하고 싶은데 고정관념이나 한계들이 나를 옭아맨다”고 토로했다.
엄정화는 나이라는 프레임을 자꾸 생각하게 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사실 우리는 다 나이를 먹는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도전하고 살아가야 하고, 표현해야 되고, 내가 좋은 걸 해내고 꿈을 이뤄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나이 때문에 괴로워하는 게 좀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제 100세 시대인데, 아직 가야 할 길이 먼데 자꾸만…”이라며 아쉬움을 내비친 그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에는 격하게 동의해 웃음을 자아냈다.
마지막으로 나이와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많은 젊은 세대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살면서 힘든 일은 끝없이 생긴다. 그럼에도 힘듦과 막막함에 함몰되지 말고, 자신이 원하고 가슴 뛰게 만드는 일을 용기 있게 선택해 나아가라”고 조언했다. 이어 “커리어에서는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전하고 싶다.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데 대한 후회는 없다고 말해온 엄정화는 한때 그 선택을 두고 안도와 슬픔이 교차했던 순간도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엄정화는 지난 8월29일 유튜브 채널 ‘Umaizing 엄정화TV’를 통해 배우 이엘과 나눈 진솔한 대화를 공개했다.
영상에서 두 사람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화두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엘이 “가끔 나 자신을 다독인다”라고 운을 떼자, 엄정화는 “그거 정말 중요하다”며 공감했다.
이엘은 촬영으로 지친 날, 밖에서 사 온 남은 간식을 먹으면서 ‘힘든데 이런 걸로 버텨 미안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다 문득 ‘그럼 나는 누가 돌봐주지?’라는 생각이 밀려와 혼자 울먹였다고 털어놨고, 엄정화는 “잘 찾았다. 우리에겐 꼭 필요하다”고 답하며 따뜻하게 안아줬다.
엄정화도 “갑상선암 수술 뒤 나 역시 그런 감정이 크게 왔다”며 당시를 떠올리다 목이 메었다. 이엘은 “그건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큰일이었다”며, 노래와 연기에 직결되는 목소리가 곧 엄정화라는 정체성과 맞닿아 있음을 짚었다.

엄정화는 당시 두려움이 컸다고 했다. “어쨌든 암이라 무서웠다”고 고백한 그는 수술실 앞에서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스쳤다고 회상했다. 결혼을 하지 않아 아이를 두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동시에 그 사실이 주는 슬픔이 함께 밀려왔다는 것이다.
그는 2010년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후유증으로 성대 한쪽 마비가 오면서 약 8개월간 말조차 하기 어려웠고, 재활을 통해 서서히 목소리를 되찾았다. 이후 2016년 정규 10집을 내고 무대로 복귀하며 다시 가수의 자리를 굳혔다.
결국 엄정화의 고백은 ‘결혼·나이’라는 규범에 갇혔던 시대를 건너오며, 자신이 택한 길의 의미를 자신의 행보로 보여준 기록이다. 결혼하지 않은 삶에 대한 안도와 슬픔이 교차한 순간도 있었지만, 그는 상처를 딛고 무대로 돌아왔고 지금은 더 자유로워진 시대의 아이콘으로 서 있다. 남의 잣대가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삶과 커리어를 선택하라는 메시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