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명 아기수출 대국…부끄러운 나라, 다름 아닌 한국입니다

2025-05-18

14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케이 넘버'는 한국 출신 해외 입양인들을 다룬 작품이다.

그들의 기구한 사연, 눈물겨운 친부모 상봉 등을 다룬 기존 작품들과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양부모가 한국에 오지 않아도 아이를 입양할 수 있는 '대리 입양' 제도를 통해 20만명의 아이들을 해외로 보냈던, '아동 수출' 대국 한국의 어두운 역사를 조명한다.

'케이 넘버'(K-Number)란 영화 타이틀은 해외 입양아들에게 부여된 인식 번호다. 아이들은 상품처럼 서류상 번호로 기록됐고, 그 서류조차 출생 관련 정보가 누락되거나 조작되기 일쑤였다. 다큐를 보고 나면,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K'라는 수식어가 적잖이 부끄러워진다.

지난해 부산 국제영화제 '관객상' 등을 수상한 다큐는 1970년대 초 미국에 입양된 미오카 밀러(59세 추정, 한국명 김미옥) 등 해외 입양인들의 뿌리 찾기를 축으로, 해외 입양 시스템의 부실과 부조리를 들춘다. 입양 서류를 통해 친가족을 찾으려는 미오카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한다. 서류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을 뿐더러, 접근한다 해도 기록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이는 뿌리를 찾으려는 해외 입양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거대한 '장벽'이다.

다큐를 연출한 조세영(46) 감독과 미오카를 15일 서울 서교동의 영화사 사무실에서 함께 만났다. 조 감독이 다큐를 만들게 된 건, 2018년 우연히 접한 기사 때문이었다. 한국 출신 입양인이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가 돼서 추방됐다는 내용이었다. 양부모가 입양 재판을 통해 귀화 시키지 않아 미국 시민권 없이 불법 체류자로 살고 있는 한국 출신 입양인이 2만 명이나 된다는 현실에 그는 눈이 번쩍 뜨였다고 했다.

조 감독은 "한국의 해외 입양 시스템과 사후 입양인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 지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그 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해외 입양인들의 친부모 찾기 여정을 따라다녔다"고 말했다.

미오카는 "미국 양부모에게 학대를 받다가 18세 때 내쫓긴 게 평생 잊히지 않는 트라우마가 됐다"면서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자라는 해외 입양아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다큐는 한국의 해외 입양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역사를 되짚는다. 전쟁 고아, 혼혈아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 하에 이승만 정부 때 시작된 해외 입양은 1970~80년대 국가 지원을 받은 입양 기관들이 경쟁적으로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대거 미국·유럽으로 보내면서 급증했다.

국내 입양 기관이 예비 양부모를 대신해 입양 절차를 대리할 수 있도록 한 대리 입양 제도(2011년 폐지)는 쉽게 말해 입양 부모의 집으로 아이를 '배달'해주는 서비스였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이 '아동 수출'로 외화 벌이를 한다고 비난 받은 이유다. 실종 신고된 아이들까지 해외 입양돼 버리는 일도 발생했다.

조 감독은 "입양의 효율성을 위해 아이의 안전과 행복을 뒷전으로 미룬 것"이라며 "그렇게 졸속으로 이뤄졌기에 인권 유린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이후 7번이나 방한한 미오카의 뿌리 찾기는 녹록지 않았다. '개인정보 보호', '사유 재산' 등의 이유를 들며 기록 공개를 꺼리는 시설에 집요하게 요청한 끝에 받아본 문서는 이름, 발견된 장소와 상황 등의 정보가 부실하게 기록돼 있었다.

그는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길에서 발견된 5살(추정) 때 가족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 있는데, 기록엔 고아로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에 돌아와 입양 관련 기관에 갈 때마다 내놓는 정보가 달라져 곤혹스럽다는 해외 입양인도 있다.

다큐에는 한 해외 입양인이 "한국인들은 우리가 돌아오는 걸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 질문은 다큐를 촬영하던 조 감독의 머릿 속을 내내 맴돌았다. 그는 "수많은 우리 아이들이 해외로 나갔는데, 정작 우리는 그들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외면해 왔다"며 "부끄러운 기록이지만 해외 입양 이슈를 우리의 역사로, 우리 모두의 문제로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부동산 개발업자로 일하는 미오카는 "운 좋게 행복하고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면서 "내 뿌리는 나의 역사이자 아들의 역사이기 때문에 반드시 찾고 싶다.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조 감독은 "해외 입양을 포함한 기록물 관리를 국가 관리 하에 지자체가 하는 방향으로 개선되는 건 다행"이라면서도 "출생 기록 조작 등 불법을 저지른 일부 입양 기관 뿐 아니라, 졸속적이고 비인간적인 해외 입양을 장려한 정부도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전히 한국은 콜롬비아, 우크라이나에 이어 해외 입양을 많이 보내는 나라다.(2023년 기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로 '국가 소멸'을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론 자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해외로 '대량 송출'하는 나라. 우리 사회의 씁쓸한 현실이다.

"해외 입양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어요. 국내에 입양됐거나 시설에서 자랐다면 부모만 잃었을 텐데, 해외 입양돼서 고향·문화·언어까지 모두 잃었다는 거죠. 이 다큐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해외 입양(인)은 물론,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조 감독)

"70여 년의 해외 입양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한국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다큐 덕분에 많은 한국인들이 해외 입양인 문제를 알게 됐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미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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