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에는 두 가지 감액이 있다. 하나는 조기노령연금 감액. 예정된 지급개시 연령보다 앞당겨 연금을 받으면 연금액이 깎인다. 연금을 미리 받으니 당연한 감액이다. 또 하나는 소득활동 감액. 국민연금을 받는 수급자로서 일정 이상 시장소득이 있으면 연금액의 일부가 감액된다. 언뜻 들으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열심히 일해서 소득이 생겼다고 국민연금액을 깎는다? 이건 일하는 고령자에 대한 역차별이다!
이재명 정부가 이 민원에 화답했다. 정부는 소득활동 감액을 “불합리한 제도”로 평가하며, 대선 공약집에 “일하는 노인에 대한 국민연금 감액 개선”을 명시했고, 며칠 전 국정기획위원회는 소득이 월 309만원을 넘으면 국민연금을 감액하는 현행 기준을 509만원으로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조만간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법 개정에 나설 예정이다.
정부 설명만 따르면 소득활동 감액은 참 황당한 제도다. 기존 직장 은퇴 이후에도 일한다면 격려는 못할망정 오히려 불이익을 주니 말이다. 그래서 더 의문을 가져야 한다. 왜 국민연금에서 이러한 조항이 설계됐을까?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
우선 기본 사실부터 제대로 확인하자. 현재 소득활동 감액이 적용되는 월 309만원 금액은 실제 소득이 아니라 연말정산에서 근로소득공제를 거친 소득 기준이다. 이 309만원을 원래 처음 소득으로 계산하면 411만원이다. 즉 실제로 소득활동 감액은 국민연금을 받으면서도 시장소득이 월 411만원, 대략 연 5000만원을 넘는 사람에게 적용된다. 그 수는 2024년 노령연금 수급자 약 600만명 중 14만명, 2.3%로 국민연금 수급자 중 사실상 최상위 소득자들이다.
실제 연금 감액은 어느 정도일까? 월 411만원을 출발점으로 시장소득이 많으면 연금 감액도 커진다. 예를 들어 월 소득이 516만원이면 감액은 5만원이고 소득이 621만원이면 15만원으로 늘어난다. 소득이 많으면 연금 수령액의 최대 절반까지 깎일 수 있지만, 대다수 감액은 몇만원이거나 10만원 내외다.
여기서 두 가지 민원이 제기된다. 소득이 있다고 연금을 깎으면 누가 일하겠냐고? 꼼꼼히 따져보자. 지금도 월 411만원 소득까지는 감액이 적용되지 않는다. 과연 이 금액을 넘는 소득자들이 몇만원 연금 감액으로 일할 의욕을 잃을까? 정부는 감액 적용 소득 기준을 월 621만원(근로소득공제 이후 509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한다. 이러면 월 411만~621만원 소득자는 연금 감액을 당하지 않으며, 이를 초과하는 소득자들도 기준선이 상향돼 모두 감액이 줄어든다. 결국 연금 수급자 중 상위 2.3%를 위한 잔치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 지출은 연 1000억원 이상 늘어날 것이다.
또 하나의 민원이 있다. 아무리 시장소득이 많더라도 국민연금은 이미 확보한 수급자의 권리인데, 이것을 감액하는 게 적절하냐는 문제 제기다. 여기서는 형평성이 논점이다. 외국의 공적연금은 대부분 가입자가 낸 만큼 받는 수지구조로 자리 잡았다. 인구의 수명 연장에 대응해 꾸준히 연금재정의 지속 가능성 개혁을 성사시킨 결과이다. 이에 연금 수급자가 받는 연금액은 애초 당사자의 기여금이기에, 은퇴 연령 이후에 시장소득이 있다고 연금을 깎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 국민연금은 출발 때부터 내부 수지 불균형이 컸다. 이에 지금 연금 수급자들이 받는 연금액에는 가입자(사용자 포함)가 기여한 몫을 넘는 보너스가 포함돼 있고, 이를 위한 재정 부담은 불가피하게 후세대가 짊어져야 한다. 특히 국민연금의 혜택은 오래 가입한 사람일수록 많다. 고용이 안정된 노동시장 중심부일수록 국민연금을 오래 가입해 혜택을 더 많이 얻으므로, 현재의 수지 불균형 국민연금은 애초 의도와 달리 노인 내부에 역진성을 초래한다는 논란까지 낳고 있다.
지금 소득활동 감액이 적용되는 월 소득 411만원 초과 수급자들은 누구인가? 젊은 시절에도 노동시장 중심부에 있어 국민연금에서 가장 혜택을 많이 입은 사람들이라 볼 수 있다. 소득활동 감액은 이들이 노후에도 소득이 많고 수급 연금액에서도 상당한 보너스를 얻고 있으니, 일부라도 연금액을 감액해 형평성도 도모하고 국민연금 재정도 줄여보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현재 계층 간 형평성을 개선하고 미래세대의 부담도 경감하자는 제도 설계다.
정부에 묻는다. 정말 소득활동 감액이 대선 공약, 국정기획위 국정과제로 명시할 만큼 불합리한 제도인가? 정부는 소득활동 감액 제도의 취지와 실상을 인식하고 있는가? 이토록 부자들의 민원에 끌려가서야 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