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국적 감각 스민 영어 오페라…무대·음악 균형미"

2025-05-26

25일 예술의전당에서 세계 초연된 오페라 ‘라이징 월드: 물의 정령’에 대해 한국 오페라 제작 수준이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음악, 무대 미술, 연주 등이 풍부하면서도 섬세하게 직조돼 이미지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구현했다는 것이다. 다만 전반부의 느슨한 전개, 신들림 장면의 어색함 등은 대중성을 저해하는 요소라는 지적도 있다.

공연은 시작 전부터 시각, 청각, 후각 등 관객의 다양한 감각을 일깨우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객석에 들어서면 출렁이는 파도를 형상화한 아르떼뮤지엄의 ‘스태리 비치’ 영상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조향 회사 ‘센트 바이’가 제작한 시원한 향의 조향지를 받은 관객들은 물의 정령이 지배하는 세계로 초대된다.

작품은 물의 정령이 몸속에 깃든 뒤 이상 증세를 보이며 왕국에 각종 재난을 일으키는 공주를 물시계 장인이 자기 희생을 통해 구해내고 왕국에 평화를 되찾는다는 이야기다. 예술의전당은 세계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호주의 유명 작곡가 메리 핀스터러와 그의 파트너 톰 라이트에게 음악과 대본을 의뢰해 처음부터 영어로 제작했다.

우선 음악 측면에서는 다양한 음악 어법을 시도했다는 점이 주목받았다. 메리 핀스터러는 현대 음악은 물론 르네상스 등 고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은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이번 작품은 현대 음악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중세 성가, 미니멀리즘, 뮤지컬 등 여러 음악 양식을 절충했다. 송주호 평론가는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는 음악 양식을 활용해 현대 오페라의 장점을 십분 살렸다”고 평가했다. 이용숙 평론가도 “타악 파트가 복잡하고 다채롭게 쓰였지만 생각보다 듣기에 편안했다”고 말했다.

합창과 독창, 반주의 균형감도 높이 평가됐다. 이날 공연을 찾은 테너 이명현은 “오페라에서 다양한 음악적 요소가 동시에 나오면 한쪽이 묻히기 쉬운데 이번 작품은 노래와 오케스트라의 균형이 훌륭했다”며 “다양한 요소가 어우려져 한국 오페라의 제작 수준이 한단계 올라갔다”고 말했다. 극을 이끈 메조소프라노 김정미의 연기와 노래, 노이오페라합창단의 표현력과 에너지도 두드러졌다.

반면 레치타티보(말하듯 부르는 노래)의 비중이 높고 귀에 익는 아리아가 없다는 점은 일반 관객에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요소였다. 또 공주 역을 맡은 소프라노 황수미의 전반부 분량이 적어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무대 장치와 미술은 호평을 받았다. 프로젝션 매핑 기법을 활용해 극의 전개에 적절하면서도 아름다운 무대를 구현했고 의상은 한국의 미를 살리면서도 고대 왕국의 분위기를 자아냈다는 평가다. 거문고, 산수화, 한국어 등을 극의 중간에 오브제처럼 사용해 한국적인 이미지를 스며들게 했다.

다만 K오페라로 해외 흥행을 노리기에는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보편적인 감성을 담으려다 보니 동서양의 신화와 설화를 혼합했는데 이로 인해 개연성이 부족하거나 전개가 엉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1막 후반 왕과 신하들이 신들린 딸의 치료법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장면에서는 이완되고 정적인 연출 탓에 긴장감이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도 있었다. 영화 ‘엑소시스트’를 연상시키는 물귀신 들린 공주의 묘사는 다소 어색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송민호 평론가는 “원작이 없는 창작 시나리오라는 한계로 인해 군데군데 논리의 비약이나 모순이 있다”며 “K오페라를 지향한다면 좀 더 과감하게 한국적으로 연출했으면 어땠을까 싶다”고 말했다.

‘물의 정령’은 29일과 31일 국내에서 추가 공연을 이어간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국내외 관객들에게 먼저 선보인 뒤 대만을 시작으로 해외 진출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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