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아리랑’의 첫 대목은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로 시작한다. 신의 솜씨 같은 자연의 신묘함과 불교 유적 가득한 믿음의 영산 ‘금강’의 진면목이 담긴 것이다. 지옥에 가지 않으려 살아 금강산 가보길 소원하는 ‘버킷리스트’였다 하니, 민초들 영혼의 이상향 같은 곳이다.
금강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실시된다.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와 세계자연보전연맹이 금강산에 대해 ‘등재’ 권고 판단을 내린 것으로 27일 전해졌다. 이변이 없으면 7월 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확정되는데, 자연유산·문화유산 성격을 모두 지닌 ‘복합유산’으로 등재될 거라고 한다. 복합유산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해동 명산 금강은 중국의 소동파가 “고려에 태어나 금강산을 한 번 보는 게 소원”이라 했을 정도로 예로부터 이름이 높았다. 오죽하면 중국 사신이 오면 금강산 가길 청해 조정이 골치를 앓았다는 <조선왕조실록> 기록까지 남았을까. 왕세자 시절인 1926년 금강산을 방문한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6세 아돌프는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하루는 금강산을 만드는 데 썼을 것”이라고도 했다. 명성에 비해 세계유산 등재가 오히려 늦은 감도 있다.
문헌상 금강산 이름은 9개나 된다. 봄의 금강이 대표 명칭으로, 사시사철 다른 풍경에 여름 봉래산(신선의 산), 가을 풍악산(단풍 든 큰 산), 겨울 개골산(바위 뼈 산)으로도 불렸다. 내·외금강과 해금강으로 구분되는 금강산 권역 대부분은 북한에 속하지만, 가칠봉·향로봉 등 남한에도 일부 걸쳐 남북이 공유하는 명산이다.
금강산은 현대사에서 민족 화해와 한반도 평화의 염원이 서린 영산이다. 1998년 금강산 관광으로 반백년 만에 열린 남북의 문이 2008년 관광객 피격·사망 후 닫혔고, 지금은 역설적으로 분단의 한을 절감하는 곳이 됐다. 북한은 2022년 해금강호텔·온정각 등 남측 흔적을 지우더니 올 초엔 인도주의 상징인 이산가족면회소마저 철거했다. 남측 시민들이 새해 일출을 금강산에서 보던 남북의 짧은 ‘화양연화’가 언제 다시 돌아올지 기약조차 할 수 없다. 금강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전기가 되길 소망한다. 세계인의 유산이면서 민족 화해·평화의 상징으로 다시 서는 그날을 손꼽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