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마늘·양파 등 저율관세할당(TRQ) 증량을 위한 절차를 졸속 진행했다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나온 가운데, TRQ와 할당관세에 대한 생산자의 역할을 확대하는 내용이 유력 대권 주자 공약에 담겨 주목된다. 국회에도 이같은 취지의 법안이 제출된 상황이어서 향후 국회가 재가동하면 논의에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감사원이 TRQ 졸속 증량을 지적하는 감사 보고서를 공개해 파장이 이어진다. TRQ를 증량하려면 농림축산식품부 자문기구인 농축산물무역정책심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정당한 사유가 없는 경우 출석 회의가 원칙이고 안건은 7일 전엔 위원들에게 배포돼야 한다.
하지만 감사원에 따르면 2022년 7월∼2024년 9월 22차례 심의회가 모두 서면으로 진행됐다. 특히 2022년 8월 마늘 TRQ 증량 관련 심의회, 2023년 5월 생강 심의회, 2023년 7월 양파 심의회 등 중요한 안건을 다룬 심의회도 정당한 사유 없이 서면으로 열렸다. 또 농식품부는 22차례 심의회를 진행하면서 TRQ 증량의 적정성을 판단할 근거자료 없이 대상 품목의 간략한 내역만을 심의회 안건으로 작성해 평균 3.9일 전에 위원들에게 배포했다.
국내 농가에 큰 파장을 일으킬 TRQ 증량이 부실·졸속으로 논의된 사실이 확인된 가운데, TRQ 증량과 할당관세 적용에 대한 생산자 역할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주목받는다. 최근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군산·김제·부안을)이 발의한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개정안’은 농축산물무역정책심의회 설치 근거를 법률로 상향(현재 농식품부 훈령)하고 전체 위원의 3분의 1 이상을 생산자로 구성하도록 했다. 지금 훈령에는 위원회 구성에 관한 규정은 없다.
같은 당 임미애 의원(비례대표)이 발의한 ‘농안법 개정안’은 마찬가지로 농식품부 훈령에 따른 ‘농산물수급조절위원회’의 설치 근거를 법률로 상향하고, 기능을 현재 자문에서 심의로 강화했다. 그러면서 해당 위원회에 TRQ 증량과 할당관세 적용에 관한 사항도 심의하도록 했다. 또 위원회는 3분의 1 이상을 생산자단체 대표로 채우도록 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는 ‘생산자단체에 수입쿼터 관리권을 단계적으로 부여하겠다’는 대선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지난해 10월에도 강원 평창에서 열린 ‘배춧값 안정화 현장간담회’를 찾아 “아주 오래된 생각”이라면서 “(긴급) 수입 허가권을 생산자단체에 주면 수급 자동 조절 기능이 작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가 말한 수입쿼터 관리권(수입 허가권)은 실수요 업체에 수입권을 배분하는 권한을 뜻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미 일부 품목에 대해 생산자단체가 수입권 배분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거기서 발생한 수수료 수익을 생산자에게 돌려주자는 게 이 후보의 구상”이라고 했다. 실제 정부는 TRQ·할당관세 물량에 대해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를 포함한 수입추천대행기관을 지정, 수입권 배분 역할을 맡긴다. 한국사료협회가 사료용 근채류, 한국유가공협회가 치즈류에 대해 수입권을 배분하는 식이다.
이 후보의 공약은 임 의원 개정안에 ‘TRQ를 증량하거나 할당관세를 적용하는 경우 생산자단체를 지정해 수입·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 신설로 반영돼 있다.
지난 3년간 생산자를 배제한 TRQ 증량과 할당관세 적용이 내내 화두였던 만큼 새 정권에선 이들 법안에 대한 국회 논의가 활발해질 수 있다. 다만 수입쿼터 관리권을 생산자단체에 부여하는 방안에 대해선 농업계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권혁정 전국마늘생산자협회 사무총장은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칠 수입쿼터 관리는 공공의 역할이지 농민단체가 맡기엔 한계가 있다”면서 “단체와 생산자 간 농·농 갈등이 커질 소지도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쿼터 배분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생산자에게 공유하는 방안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현재도 수입추천대행기관에 생산자단체를 배제하는 근거는 없고 일부 협회는 그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다만 미미한 수수료 수익에 견줘 업체 추천과 사후관리 등에 따른 행정 업무는 과중해 일반 생산자단체가 이같은 업무를 희망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양석훈 기자 shaku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