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불쑥 꺼낸 오산 MCRC

2025-09-01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직전 불쑥 거론해 주목을 받았던 곳이 있다. 미 7공군사령부가 있는 오산 공군기지다. 미국은 ‘오산 에어베이스(Osan Air Base)’로 부르지만, 한국에선 MCRC(중앙방공통제소)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조은석 내란특검이 압수수색했던 바로 그 MCRC가 오산 미 공군기지 안에 자리해 있다.

MCRC는 쉽게 말해 한반도와 주변 하늘을 24시간 감시하는 매의 눈이다. 10여 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 놀라움과 든든함을 동시에 느꼈다. 보안상 내부 모습을 전할 순 없지만,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었다.

한반도 하늘 감시하는 ‘매의 눈’

전시엔 한미연합공군사령부 전환

향후 미군 역할 변경에 대비해야

만약 북한이 제2의 남침을 감행하면, 전시작전권은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에게 넘어간다. 이때 오산 기지의 미 7공군사령부가 한·미 공군을 통합 지휘하는 전시 사령부가 된다.

전쟁이 터지면 가장 먼저 타깃이 되는 곳이 방공망과 공군기지다. 그래서 한·미 방공망이 중첩된 오산 기지는 북한의 첫 타격 목표가 돼 방어도 보안도 삼엄하다. 물론 북한은 망하려 하지 않는 이상 전면전을 일으킬 수 없다. 북한이 MCRC를 때리는 순간 미7공군사령부도 동시에 공격받아서다. 이게 ‘인계철선’ 개념이다.

인계철선은 최근 국제사회의 우크라이나 휴전 논의에서도 등장했다. 이달 초 뉴욕타임스가 우크라이나 안전보장 방안으로 세 가지 아이디어를 소개했는데 첫째 수만 명 규모의 서방 평화유지군 주둔, 둘째 이보다 적지만 서유럽 병력의 인계철선 배치, 셋째 수백 명 수준의 감시단 파견이다. 방어 능력은 첫째가 가장 크고, 셋째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주한미군은 이 세 가지를 모두 수행 중이다. 2만여 명의 주한미군은 주독미군·주일미군 다음으로 많은 규모이고, 북한 도발을 막는 인계철선인데다, 주한미군사령관이 겸직하는 유엔군사령부가 정전협정 준수를 감시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첫 방미에서 ‘탈(脫) 안미경중’을 공언해 트럼프 행정부와 워싱턴 조야의 의구심을 어느 정도 불식시켰다. 그러나 과제는 여전하다. 미국이 앞으로 본격적으로 요구할 건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이다.

미국은 이미 중국을 팍스 아메리카나의 최대 도전자로 간주해 국제 안보·통상 질서를 재편하려 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선 한·미가 주한미군 역할 변경에 대한 입장차를 들춰내지 않고 끝냈다지만, 미국의 방향성은 분명하다. 미국은 서태평양 지도 위에 일본을 거점으로 한 뒤 한국과 대만을 양 교두보로 삼아 중국의 해양 진출을 막는 선을 그리고 있다. 이를 위해 대북 방어 붙박이군인 주한미군을 한반도 바깥으로 확장 가능한 유연한 전력으로 바꾸려 한다. 특히 트럼프 2기에 들어서며 주한미군 문제가 더욱 예민해졌다. 그전까지는 대북 억지력 약화와 중국의 반발이 한국의 당면한 과제였지만, 이젠 북·미 관계가 가장 주목해야 할 변수가 됐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을 ‘통제 가능한 국지적 위협’으로 가둘 수 있다고 믿고 있는지 모른다. 이를 통해 대북 방어 부담을 한국에 넘기고, 주한미군을 대만 방어와 중국 견제에 돌리려는 계산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선 결코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자칫 한국의 안보·경제에 균열을 초래할 수 있는데, 개혁·개방·정상국가화 로드맵은 합의하지 않은 채 ‘핵 동결에서 끝난 북한’은 미국엔 통제 가능할지 몰라도, 한국엔 현존하는 핵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역할 변경에 계속 반대할 경우 미국의 선택은 무엇일까. 단순하다. 병력을 점점 줄이면 된다. 경기도의 임진강 너머 북쪽에 지금은 관광지로 개발된 캠프 그리브스라는 옛 미군 기지가 있다. 이곳에 주둔했던 주한미군 506공중강습부대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이라크전에 차출됐다가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현재 주한미군은 2만8000여 명 규모로 알려져 있지만, 지난해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2만4000여 명으로 이보다 적다.

주한미군 역할 변경은 소련 붕괴 이후 중국을 제1의 도전으로 간주한 미국이 진행하는 그레이트 게임의 일부이다. 한·미동맹은 당위의 언어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동맹으로 미국이 얻는 이익을 분명히 알리면서, 미국 내 조선 인프라 구축에서 드러나듯 한국만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냉정한 국제질서에서 동맹은 선의가 아니라 공동의 이익으로 유지된다. 미리 대비하고 있어야 예상치 못했던 비용을 치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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