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이성 유방암은 암세포가 원발 부위인 유방을 넘어 다른 장기로 퍼진 상태를 가리킨다. 과거만 해도 예후가 좋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치료법의 발전으로 생존율이 크게 오르고 있다. 특히 허투(HER2) 표적 치료제의 발전은 전이성 유방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며 환자의 치료 결과를 개선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게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다. 엔허투의 등장으로 허투 양성∙음성으로 나뉘던 기존의 이분법적 구분이 더 세분화하고 치료 혜택을 받는 환자도 늘어났다. 서울대병원 병리과 고지원 교수에게 신약의 등장으로 달라진 유방암 분류 기준과 제도적 대응 방안에 대해 들었다.
-유방암 진단과 치료에 있어 허투가 왜 중요한가.
“허투는 유방암을 분자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분류할 때 기준이 되는 단백질이다. 허투 발현 정도(허투 시그널)가 중요한 이유는 과거 이 유전자가 증폭된 유방암의 예후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투를 표적으로 한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예후가 안 좋다고 알려진 허투 양성 유방암이 오히려 표적 치료의 효과를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아형으로 바뀌었고 이는 유방암 치료 패러다임에 큰 전환점이 됐다.”
-그중에서도 엔허투의 등장으로 달라진 점은.
“이전에는 허투가 과도하게 발현되지 않는 음성 환자에겐 표적 치료가 듣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었다. 엔허투의 등장으로 고정관념이 깨졌다. 엔허투가 이들 환자, 즉 허투 저발현 환자들에게도 예상을 뛰어넘는 치료 효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한 연구결과도 있다.” 해당 연구는 전이 단계에서 1~2회 항암화학요법을 받은 유방암 환자 557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절제 불가능하거나 전이성 허투 저발현 환자로, 해당 환자군에서 엔허투는 대조군 대비 무진행 생존 기간 중앙값을 2배가량 연장하고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을 약 36% 낮췄다. 또 종양 크기를 줄이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엔허투로 진단 기준도 달라졌는데.
“단순히 허투 양성과 음성으로 나뉘던 기준에서 벗어나 이제는 저발현, 초저발현까지 구분하게 됐다. 기존에 허투 음성 진단을 받아 표적 치료가 불가능했던 환자도 허투 시그널이 조금이라도 확인되면 치료가 가능해진 거다.
보고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전문가들이 병리 슬라이드를 다시 판독했을 때 허투 발현이 전혀 없다고 여겨졌던 환자 중 많게는 거의 절반 가까이가 실제로는 허투 저발현 또는 허투 초저발현 상태였던 것으로 재해석된다.”
-진단 결과로 치료 전략도 달라지겠다.
“허투가 조금이라도 발현된 게 확인되면 그 자체로 엔허투를 쓸 수 있는 근거가 생기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치료 결정은 단순히 진단 결과 하나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허투 발현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특정 약제를 쓰게 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말이다. 각 약제는 효과와 함께 부작용을 동반하기 때문에 최종적인 처방 여부는 종양내과 전문의가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게 된다. 예를 들어 환자의 나이, 기저 질환, 생활 방식, 치료 이력 등 다양한 요소가 모두 치료제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허투 발현 정도는 어떻게 확인하나.
“가장 널리 쓰이는 검사법은 면역조직화학검사(IHC)다. 항원-항체 반응 원리를 이용해 특정 단백질이 조직 내에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단지 단백질의 유무뿐만 아니라 이 단백질이 세포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까지 종합적으로 분석 가능하다.
유방암의 경우 허투 단백질이 전체 암세포 중 얼마나 많은 세포의 막에 얼마만큼 진하게 염색돼 있는지를 기준으로 허투 발현 정도를 판단한다. 유방암 확진을 위해 조직검사를 받은 경우라면 면역조직화학검사를 별도로 요청하지 않아도 이미 시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유방암 진단을 위해 조직검사를 받게 되면 호르몬 수용체와 허투 발현 상태를 함께 확인하는 게 통상적인 진료 과정이라서다.”
-허투와 관련된 진단 가이드라인도 마련돼 있나.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마련한 허투 진단 가이드라인은 없다. 대신 병리학계에서는 미국 임상종양학회와 미국 병리학회가 공동으로 발표한 국제 가이드라인을 참고하고 있다. 2023년 개정된 지침에 허투 저발현·초저발현이라는 단어가 직접 들어가 있지 않지만, 새로운 표적치료제의 등장으로 병리과 의료진이 기존보다 훨씬 더 정밀하게 허투 면역조직화학검사 슬라이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권고가 포함돼 있다.”
-이런 배경 속에 재검 사례도 늘고 있다.
“엔허투 치료를 고려할 수 있는 환자의 경우 면역조직화학검사를 재의뢰하는 거다. 과거에 허투 음성으로 진단받았던 환자 중 허투 저발현이나 초저발현 상태인 환자가 포함됐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투 저발현·초저발현에서 엔허투의 치료 효과가 확인되면서 과발현 여부만이 아니라 미세한 발현 수준까지 정밀하게 평가하려는 노력이 진료 현장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병리과의 책임감도 그만큼 더 커지겠다.
“허투 진단이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실제 치료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됐다. 이에 따라 병리과 의사들의 책임감도 한층 무거워진 게 사실이다. 작은 단서 하나에도 치료 기회를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달라지기 때문에 진단에 보다 신중을 기하고 있다.”
-제도적 기반은 잘 갖춰져 있나.
“허투 진단과 관련해 임상적으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은 미비한 상황이다. 대표적인 예가 재판독에 대한 수가 청구 불가 문제다. 현행 제도상 병리과 의료진이 동일한 병리 조직에 대해 허투 면역조직화학검사를 다시 수행하거나 재판독할 경우 별도의 수가 청구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 결과 의료기관과 병리검사실의 노력으로 무상으로 검사가 이뤄지는 상황이나 지속가능한 구조는 아니다.”
-어떤 식의 보완이 이뤄져야 할까.
“재판독을 의료적 의미가 있는 행위로 보고 이에 상응하는 제도적 지원을 해줘야 한다. 재판독 과정은 단순한 반복 검사가 아니다. 과거 진단 기준으로는 파악하지 못했던 저발현이나 초저발현을 반영해 환자의 치료 기회를 넓히기 위한 행동이다. 병리과 의료진의 노력과 환자의 치료 기회가 제도적 한계에 막히지 않도록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