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한 나무, 거목으로 성장하다···K발레 레전드 ‘최태지×문훈숙’ 헌정 공연

2025-05-29

# 어두운 무대 위, 기다란 나무 한 그루가 외로이 서 있다. 잎이 다 떨어진 채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겨울나무였다. “언제 꽃을 피우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겨울나무는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이라고 답했다.

나무는 한국 발레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은유였다. 서구 예술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던 변방, 발레와 관련된 것이라곤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기 어려웠던 척박한 땅. 하지만 오늘날 명실공히 르네상스를 맞이한 한국 발레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는 무대가 지난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 마련됐다.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 단장(66)과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62)이 주인공이었다. 프리마 발레리나로서, 또 지도자와 경영자로서 자타공인 ‘한국 발레의 레전드’로 불리는 두 거목이 무대 위에서 대담을 진행했다. ‘대한민국발레축제’ 15주년 특별공연으로 진행된 공연 <커넥션(conneXion), 최태지×문훈숙>에서는 두 거장의 여정을 따라 무대 위 앙상했던 나무가 봄, 여름을 지나 가을날 결실을 맺는 형태로 변해갔다. 두 주인공을 중간에서 연결해 준 이는 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주원 대한민국발레축제 예술감독이었다.

척박한 겨울을 지나

K-발레에 기원전과 후가 있다면 아마도 최태지·문훈숙 두 사람이 각각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로 활동하던 1980년대 이전과 이후일 것이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 최태지는 일본발레협회 회장의 제자였던 ‘한국 발레의 선구자’ 임성남 전 국립발레단장을 만난 이후 1897년 고국의 발레단에 오게 된다. 최태지는 “일본에도 없는 ‘국립’이라는 단어에 강하게 이끌렸다”고 했다. 문훈숙도 한국 태생이 아니다. 미국 워싱턴에서 나고 자란 문훈숙은 이날 “발레가 아니었다면 아마 최 단장님과 만날 수도 없었을 텐데 발레라는 매개체를 통해 만났고, 무용수로 또 경영자로 오랜 세월 동행해 왔다”고 했다. 흔히들 이들을 남진·나훈아 같은 영원한 라이벌로 묘사하지만 실상 두 사람은 서로에게 힘이 되는 둘도 없는 존재였다. 문훈숙은 “어떻게 하면 발레를 발전시킬지, 좋은 명작들을 가지고 오고 또 창작할지, 단원 처우는 어떻게 개선할지 늘 꿈과 고민이 같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함께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최태지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만 36살에 국립발레단 단장이 됐다”면서 “국립극장 산하에 있다가 하루 아침에 독립하게 됐는데 늘 예산과 지원이 부족했다”고 했다. 그는 “여기 있는 김주원 ‘뮤즈’를 데리고 예산 담당 공무원들 찾아다니면서 ‘공연 하루 하면 토슈즈가 몇 개나 쓰이는지 아느냐’며 호소했더니, ‘빨아쓰면 되는 거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오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 봄을 맞아 무대 위 나무의 가지에는 하얀 벚꽃이 만개했다. 그리고 이어 푸르른 잎들이 무성하게 뒤덮었다.

대중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게 된 한국 발레의 명작들은 대부분 이 두 사람이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 작품 라이센스부터 안무 지도까지 세계 최고의 발레단인 러시아의 마린스키와 볼쇼이 발레단이 큰 역할을 하는데, 두 거장의 산파술로 이들 발레단의 DNA가 한국의 국립·유니버설 두 발레단으로 스며들었다.

최태지는 “지난 19일 타계한 러시아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 선생님은 국립발레단에는 제2의 아버지 같은 존재”라며 “무용수는 무대에서 작품을 만날 때 성장하는 걸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릴까만 고민했고 그때 그리고로비치를 만났다”고 했다. <호두까기 인형>(2000)부터 <백조의 호수>(2001), <스파르타쿠스>(2001)를 비롯해 여섯 작품은 그리고로비치가 직접 안무를 손보아가며 국립발레단 단원들을 지도하며 무대에 올린 작품들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은 마린스키의 유산을 전수받았다. 문훈숙은 “구소련 당시 키로프(현 마린스키) 발레단은 비디오로만 만날 수 있었는데, 이 발레단이 미국 순회 공연 중에 제 영상을 본 것이 계기가 돼 1989년에 ‘지젤’ 공연에 초대받아 공연한 뒤 본격적으로 교류하게 됐다”고 했다. 문훈숙은 “1992년에 ‘백조의 호수’를 올리고 싶다고 했는데 첫마디가 안된다, 그걸 할 수준이 아니라고 거절당했다”면서 “겨우 설득한 뒤 무려 6개월을 준비해 올렸더니 마린스키에서도 그 근성에 크게 감동하더라”고 했다. 그후 23년간 마린스키발레단 예술감독을 지낸 올레그 비노그라도프가 1998년 유니버설에 예술감독으로 취임해 10년 가까이 재임하며 정통 고전발레의 명맥을 이어갔다.

# 나뭇잎에는 완연한 가을빛이 스며들었다.

명작·고전 레퍼토리를 확실하게 장착한 한국 발레는 다음 단계인 창작 발레로 나아간다. 유니버설발레단이 제작한 <심청>은 2011년부터 월드투어 메인 작품으로 발레 본고장인 러시아와 프랑스 무대에 올라 현지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국립발레단도 <왕자호동> <허난설헌> 등의 창작 발레를 선보이며 한국적인 발레를 모색했다.

전 세계 유수의 발레단에 한국인 무용수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무용수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1999년 강수진 현 국립발레단장을 시작으로 김주원, 김기민, 박세은, 강미선 등 무용계 아카데미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자도 5명이나 배출했다.

이날 공연은 일종의 토크쇼 형태로 진행됐지만 기라성 같은 무용수들의 발레 무대도 함께 선보였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전·현직 수석무용수들이 헌정공연 무대를 빛냈다.

두 발레단의 ‘간판’ 전·현직 수석무용수들이 나와 고전과 창작 발레 파드되(2인무)를 2개씩 선보였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강미선과 이현준이 나선 <라바야데르> 니키아와 솔로르 파드되를 시작으로 황혜민 전 수석과 이동탁 수석이 창작 발레 <심청> 문라이트 파드되를 보여줬다. 특히 황혜민 전 수석은 8년 만에 발레 무대에 선 것이어서 박수 갈채를 받았다.

공연 마무리를 앞두고는 국립발레단 창작 <왕자호동> ‘호동과 낙랑의 사랑’과 <레이몬다> 파드되가 펼쳐졌다. 호동과 낙랑은 국립발레단의 전·현직 수석 정영재와 김리회가, 레이몬다 파드되에는 국립발레단의 전성기를 이끈 발레리나 김지영 전 수석(경희대 교수)과 이재우 수석이 함께 했다.

왕자호동은 지난 달 작고한 문병남 전 국립발레단 부예술감독이 안무했고, 레이몬다는 러시아의 유리 그리고로비치 개정안무였다. 작고한 발레계의 두 거인에 대한 헌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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