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맞춰 광장무 추는 시민들
‘역시 중국이구나’ 생각했지만
주변엔 장갑차 동원 경계 태세
일상·통제 섞인 부조리극 연상
최근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주최 측의 배려로 신장생산건설병단이 황무지를 개간해 일군 사과와 향배(香梨) 등 과실농장을 둘러보고, 타클라마칸 사막의 서북쪽 끝자락도 구경했다.
신장생산건설병단은 신장의 특수 행정체계다. 원래 생산건설병단은 1950년대 네이멍구, 헤이룽장 등 각지의 준군사조직으로 개발·개척을 담당했다. 문화대혁명 후 모두 해체됐다가 신장에서만 1981년 부활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거 황무지였던 곳에서 농작물을 기르고, 사막 인근에서 소규모 어업까지 할 수 있게 됐다는 관계자의 설명에는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짧은 일정 탓에 깊이 있는 관찰은 어려웠다. 되레 가기 전보다 신장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졌다. 그 와중에 눈에 들어온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기록으로 남겨본다.
베이징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우루무치 상공을 거쳐 신장위구르자치구 내 바인궈렁(巴音郭楞) 몽골 자치주의 쿠얼러(庫爾勒)시로 향했다. 착륙을 1시간여 앞두고 기내 승무원이 창문을 모두 닫으라고 안내했다. 쿠얼러공항이 군 공항을 겸하고 있어 그렇다는 것 같은데 낯선 일은 아니었다.
다만 기내 조명까지 꺼 어둡게 한 것은 다소 의아했다. 혹자는 “외부 노출을 꺼리는 시설, 이를테면 위구르족 수용소 같은 것이 창밖으로 보이는 것 아니냐”거나 “창문을 닫게 하고 비행기 내의 조명을 끈 것은 승객이 창문을 열면 새어 나오는 빛으로 적발을 쉽게 하려는 것”이라는 의심 어린 시선을 보낼 수도 있겠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다.
신장의 도시는 중국의 여느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변조선족자치주 등 소수민족 밀집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듯 ‘여러 민족이 중화민족 대가정에서 석류알처럼 굳게 뭉치자’는 구호와 함께 석류와 석류알을 표현한 조형물이 광장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날 밤 쿠얼러 시내의 한 광장에서 본 풍경은 지금도 선명하다.
어둑해진 저녁, 많은 시민이 모여 음악에 맞춰 광장무를 추고 있었다. 중국 중장년층에게 광장무는 일상적인 여가 활동이라 특이할 것이 없었다. 오히려 ‘이곳도 중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시선을 조금 넓혀 보니 풍경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긴 곤봉을 든 경찰들이 춤추는 인파 주위를 돌며 순찰하고 있었고, 광장 한쪽에는 특경(특수경찰) 차량과 방패를 든 특경대원들이 경찰견을 대동하고 서 있었다. 그 옆으로는 장갑차까지 배치돼 있었는데, 축제라기보다는 경계 태세에 가까웠다. 이런 모습은 최근 중국 전승절 열병식을 앞두고 삼엄한 경계 태세를 갖춘 베이징 시내를 보는 듯했다. 시민들은 개의치 않고 음악에 맞춰 흥겹게 춤을 이어갔다. 일상과 통제가 뒤섞인 기묘한 장면은 마치 부조리극 같았다.
이 장면을 보고도 일부 호사가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중국 당국은 소수민족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상황 자체를 과도하게 경계하는 것일 수 있다” 또는 “석류알을 단단히 뭉치게 만드는 도구가 경찰견과 장갑차라면 이는 곧 당국의 ‘불안감’이 여전하다는 것 아닌가” 등의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영화 ‘서울의 봄’에 나오는 전두광의 대사를 빌리자면 “이왕이면 ‘지역적 특수성’이라는 멋진 단어를 쓰자”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짧은 일정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오기 위해 차를 타고 공항 근처에 가자 검문이 있었다. 차창을 내리라고 해 그렇게 했고 주섬주섬 여권을 찾고 있으니 별다른 확인 없이 통과하라는 손짓이 돌아왔다. 요식행위처럼 느껴졌지만, 이미 의심에 물든 누군가는 “만약 위구르족처럼 보였다면 신분증 검사가 훨씬 철저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젠 더 사족을 붙이기도 민망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밝혀둬야 할 것 같다.
짧은 일정은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신장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짧은 경험이 남긴 의문이 해소되지 않아 아쉽다. 이런 글을 쓰고 나니 앞으로 다시 신장을 찾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아쉬움은 오래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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