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 받았다고 끝이 아니다. 돈이든 시간이든 인력이든, 기본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끌어다 쓸 수 있는 건 뭐든지 가져다 써야 한다. 하물며, 그게 내 회사에 돈을 넣어 주주가 된 투자사라면? 적극 활용하는 게 당연히 유리하다. 투자자 역시 창업자를 ‘내 수익 실현을 위해 움직일 사람’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충분히 신뢰를 하고, 가까이서 자주 만나며 도울 수 있는 걸 도와야 스타트업이 빨리 성장하며, 그 결과 서로가 이득을 얻는 ‘윈윈 관계’가 될 수 있다.
올해로 10년이 된 네이버 벤처캐피털 네이버 디투에스에프(D2SF)가 그간의 경험으로 낸 결론이다. 양상환 네이버 D2SF 센터장(=사진)은 10주년 기념 간담회에서 “그간 투자한 115개 스타트업 중 네이버 D2SF와 자주 소통하고, 밸류 프로그램을 자주 활용하는 기업의 가치 성장은 평균 18배(네이버 D2SF 투자 직전과 최근 비교)인데, 그렇지 않은 스타트업의 평균 성장률은 두 배에 그쳤다”고 말했다.
모든 회사가 일률적 성장을 보이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렇지만, 100개가 넘는 회사를 대상으로 낸 통계이므로 ‘경향성’은 볼 수 있다. 양 센터장은 “서로 라포(신뢰, 친밀감)를 형성하고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투자사와 피투자사인 스타트업의 끈끈한 유대를 강조했다. 네이버 D2SF처럼 초기투자를 주로 하는 곳일수록 스타트업과의 관계 형성은 중요하다.
유대감을 갖고 서로의 생각을 기탄 없이 나누려면, 일단 친해져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투자사와 스타트업이 서로를 긴밀하게 느끼긴 쉽지 않다. 창업자는 주주가 된 투자사의 개입을 간섭이라 느낄 수 있다. 투자사 역시 스타트업을 수익의 관점에서만 보면 안 된다. 서로 ‘못 믿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이 있다. 다음은, 양상환 센터장이 공개한 ‘투자사와 스타트업이 친해지는’ 6단계 방법론이다.
네이버와의 시너지 위한 씨앗 뿌리기
D2SF는 투자 결정에 오랜 시간을 쓰지 않는다. 한 달 내 두 번의 미팅을 통해 빠르게 결정을 하는데 중요한 기준은 ‘네이버의 시너지를 낼 가능성이 있는가’다. 따라서 두 번째 미팅에는 해당 스타트업이 하는 사업 영역과 연관된 네이버 내부 전문가와 동행한다. 네이버와 해당 스타트업 간 시너지의 씨앗이 이때 뿌려진다.
D2SF 멤버들과 상견례
투자 담당 심사역과 스타트업만 관계를 이어가는 게 아니라, D2SF의 모든 멤버와 스타트업이 만나 인사를 나눈다. 일종의 ‘킥오프’ 미팅이다. D2SF 멤버들 입장에선, “이 스타트업을 돕기 위해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하나”에 대한 탐색이 이때 시작된다. 일단, 서로 얼굴 한 번 보고나면 그전과는 상대를 다르게 볼 수밖에 없다.
밸류업 프로그램
스타트업의 가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네이버가 만든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자주 참여하면서 D2SF 멤버들과 스타트업이 수시로 교류하게 된다. 그러면서 스타트업과 D2SF 사이 라포가 형성이 된다.
같은 곳에서 일한다
양 센터장은 이 부분을 “가장 결정적”이라고 말한다. D2SF의 직원들과 스타트업 구성원들이 한 공간에서 일한다. D2SF가 투자한 스타트업에 공간 지원을 하기 때문.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은, 특정 프로그램에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수시로’ 교류가 발생할 수 있단 이야기다. 심지어 화장실을 가다가도 마주친다. 양 센터장은 “지나가면서 ‘대표님 요새 어떠세요? 뭐 힘드세요? 밥 먹을까요? 한 잔 할까요?’ 이런 이야기들을 하게 된다”면서 “이게 1년 씩 지나고 나면 나중에는 할 말 안 할 말 다 하게 된다”고 말했다. ‘라포 형성’의 결정적 허들을 넘게 되는 순간이다.
콜라보레이션
창업자들이 자꾸 마주치는 대상은 D2SF 직원들만은 아니다. 네이버로부터 투자 받은 또 다른 스타트업의 창업자하고도 마주친다. 당연히, 서로 인사를 하고 고민을 나누다 보면 함께 할 수 있는 일도 눈에 보이게 된다. 대표들끼리 커뮤니티가 생기고, 콜라보레이션도 한다. 어떤 경우는 스타트업끼리 인수합병(M&A)을 하기도 한다.
뿌린 씨앗 거두기, 네이버와의 협업
D2SF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궁극적인 원인, ‘네이버와의 시너지’가 이뤄지는 단계다. 앞서 뿌려둔 씨앗을 거두는 단계이기도 하다. 지속된 교류가 바탕이 돼 네이버라는 법인과 스타트업이라는 법인 사이에서 협력이 일어난다. 최종적으로 이게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서로가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긴밀하게 움직일 수 있다.
‘네이버와 스타트업의 시너지’는 네이버 D2SF가 중점을 두는 부분이다. 현재 전체 투자 스타트업의 64%가 네이버와 시너지를 내고 있다.
일례로, 테크타카와 같은 회사가 있다. 당일배송을 하는 곳인데, 네이버풀필먼트얼라이언스(NFA)에 들어가 있다. 일곱개 협업사 중 당일배송을 맡은 두 회사 중 하나다. 쇼핑은 네이버의 핵심 수익원이지만, 배송이 약한고리로 평가받아왔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네이버가 만든 것이 NFA. 양 센터장은 “도착보장은 당일 도착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당일 출고가 매우 중요하다”면서 “당일 출고를 하기 위해선 어디에 무슨 재고가 얼마만큼 실시간 남아 있단걸 알아야 가능한데, (테크타카의) 당일 출고율이 거의 100%”라고 네이버의 물동량 소화를 위한 테크타카와의 협업을 강조했다.
그간 네이버 D2SF가 쌓은 성과와 향후 방향성
10년간 총 115팀의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99%가 투자 당시 시드(Seed) 또는 시리즈A 단계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네이버 D2SF가 투자한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는 현재 5조2000억원 규모로 2021년(70팀) 대비 약 네 배 규모로 성장했고, 이 중 64%가 네이버와 구체적인 협업 아젠다를 발굴했다. 다만, 구체적 투자액은 공개하지 않았다.
네이버 D2SF에서 주목하는 스타트업들은 AI·버추얼·로보틱스 등 각 기술·산업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시도에 나선 개척자(Frontier)에 가깝다는 것도 강조했다. 높은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96%라는 생존율, 시드 단계에서 Pre-A까지 도달하는 기간이 18개월을 기록했다.
양 센터장은 개척자에 가까운 투자 스타트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국내 최초 AI 반도체 칩을 설계한 ‘퓨리오사AI’와 로봇SW 기업 최초 상장사인 ‘클로봇’, AI 데이터 플랫폼 최초로 상장한 ‘크라우드웍스’ 등을 대표사례로 꼽았다. 퓨리오사AI는 법인 설립 후 첫 투자를 포함, 이후 두 차례 후속 투자를 네이버 D2SF로부터 유치했다.
네이버 D2SF의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공개했다. 현재 네이버 D2SF에서 투자한 스타트업의 81%가 글로벌 진출을 본격화 중이며, 네이버 D2SF 역시 지난해 10월 미국 실리콘밸리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양 센터장은 “우리와 함께 성장해 온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로 진출해 성장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스타트업들은 더 큰 시장과 더 큰 자본을 필요로 하고 있고, 글로벌 고객이나 파트너 확보 등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는 만큼, 지난 10년의 경험과 성과를 토대로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교두보가 되고자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수연 네이버 대표도 이날 축전을 보내 D2SF의 역할과 방향성을 언급했다. 최 대표는 “네이버 D2SF가 맞이한 10년은 그간 네이버와 기술 스타트업들이 국내 IT 생태계 활성화를 넘어, 함께 단단한 IT 생태계를 만들어 온 시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앞으로도 네이버는 우수한 국내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진출을 통해, 더 큰 성장을 이뤄낼 수 있도록 함께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