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인간은 거대한 '우주 술독' 안에서 탄생했다!

2025-08-04

[비즈한국] 무더운 여름 바캉스에서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 바로 술이다. 흔히 우리는 술을 알코올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알코올은 술만 포함하지 않는다. 우리가 마시는 술에 포함된 에탄올은 다양한 알코올 중 한 종류일 뿐이다. 에탄올의 분자 구조를 그림으로 그리면 귀여운 강아지처럼 보인다는 유명한 이과 농담이 있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개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알코올은 탄소에 –OH, 즉 하이드록실기가 붙어 있는 분자를 말한다. 쉽게 말해서 산소가 가미된 탄화수소 화합물을 모두 통칭해서 알코올이라고 부른다. 자동차 부동액에 들어가는 메탄올도 알코올이다. 에탄올이 들어간 술과 헷갈리지 않기를 바란다. 메탄올은 상당히 위험하니까.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까? 고고학 증거에 따르면 인류는 기원전 만 년 전부터 이미 술을 달고 살았다. 심지어 농업이 시작된 이유를 술에서 찾는 고고학자들도 있다. 농사를 하게 되면서 나중에 술을 배운 게 아니라, 애초에 술을 더 자주 먹고 싶어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 이전부터 술은 이미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흔히 원주라고 이야기하는데, 땅에 떨어지거나 돌 틈에 있던 과일이 자연 발효가 된 것을 원숭이들이 주워 먹으면서 술맛을 먼저 알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놀랍게도 진정한 술의 기원은 따로 있다. 인간, 그리고 원숭이가 존재하기도 전에 이미 우주에는 알코올이 존재했다. 은하수를 수놓은 수백 개의 분자 구름 대부분이 술기운을 품고 있다. 심지어 우리 은하 한가운데를 떠도는 분자 구름에도 알코올은 존재한다. 어쩌면 우리 은하는 이미 수십억 년 전부터 술에 재워진 세계였을지 모른다.

우주 공간은 텅 빈 것처럼 보인다. 너무나 휑하고 공허하다. 게다가 곳곳에서 막대한 양의 엑스선, 감마선, 자외선을 내뿜는 천체들이 빛나고 있다. 강한 에너지의 빛은 덩치 큰 분자를 쪼개버린다. 그래서 우주 공간은 알코올처럼 꽤나 복잡한 분자가 살아남기 어려운 혹독한 환경이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달리 우주 공간에서도 복잡한 분자들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다. 지금까지 우주 공간을 떠도는 성운에서 발견된 화학 분자는 270가지에 달한다!

특히 다양한 유기 화합물, 고분자가 많이 만들어지는 현장 중 하나는 새로운 아기 별이 탄생하는 현장이다. 별이 탄생하는 분자 구름은 비교적 온도가 낮고 밀도가 높다. 이곳에 먼지가 높은 밀도로 모여 있다. 먼지는 분자의 덩치를 키우는 응결핵의 역할을 한다. 구름 속에는 수소, 질소, 산소 등 가벼운 기체 원자들이 따로 떠돌고 있다. 이들은 원래 매우 빠르게 움직인다. 그런데 때로 고체 먼지 알갱이에 달라붙게 된다. 그러면 원자들의 속도가 줄어들고, 서로 다른 원자들이 하나둘 먼지 입자 위에서 만나 결합하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먼지이지만 그 위에서 새로운 화학 분자가 탄생하는 우주의 연금술이 벌어지는 무대가 되는 것이다.

전파 안테나가 우주를 향하기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50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분자 구름을 추적해온 천문학자들이 뒤쫓는 가장 중요한 성분이 있다. 바로 아미노산이다. 아미노산은 지구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빌딩 블록이다. 아미노산은 복잡한 유기 생명체가 어떻게 탄생할 수 있는지, 또 지구 바깥에도 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을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다.

이미 아미노산의 존재는 지구 바깥 혜성에서도 확인되었다. 67P 혜성을 탐사했던 로제타 미션은 그 표면의 얼음 속에서 글리신이라는 아미노산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지구 생명체를 구성하는 가장 간단한 아미노산 중 하나다. 이로써 지구 생명체의 재료가 굳이 지구 위에서 조합될 필요가 없었다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애초에 지구 바깥에 존재하고 있던 재료가 우연히 지구에 날아왔고, 그것이 지구 생명의 씨앗이 되었을지 모른다.

이제 천문학자들의 시선은 태양계를 벗어나 은하수를 향한다. 그렇다면 저 수많은 분자 구름 속에서도 아미노산을 품고 있는 곳이 또 있을까? 45억 년 전 지구에서 벌어진 생명이 탄생하는 역사가 또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을까?

아쉽게도 태양계 바깥 성운, 분자 구름에서는 아직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거듭된 탐사를 통해 천문학자들은 뜻밖의 성분을 검출했다. 그게 바로 알코올이다. 대표적으로 독수리자리 방향으로 1만 광년 거리에 떨어진 가스 구름 G34.3이 있다. 우리 태양계의 1000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의 가스 구름 안에 총 400조 리터에 달하는 알코올이 모여 있다. 만약 지구에 있는 사람들이 이 알코올을 다 마시려면 10억 년 동안 모두 매일 17만 리터의 알코올을 마셔야 한다. 술고래들에게는 최고의 장소가 아닐까 싶다. 다만 마시는 것을 추천하지는 않는다. 이곳에 있는 알코올은 대부분 에탄올이 아니라 메탄올이니까.

많은 알코올을 품고 있는 놀라운 현장이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우리 은하 한가운데다. 1970년대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 중심부를 떠도는 궁수자리 B2라는 가스 구름에서 아미노산의 흔적을 찾는 여정을 시작했다. 아쉽게도 기대했던 아미노산은 검출되지 않았지만, 매우 많은 양의 알코올이 검출되었다. 이곳에는 에탄올과 메탄올을 비롯해 다양한 성분이 존재한다. 2009년에는 이곳에서 소량의 에틸 포르메이트도 검출되었다. 재밌는 점은 이 성분은 라즈베리와 같은 과일의 향을 만들어내는 화학 성분이라는 점이다. 만약 우리 은하 중심부에서 혓바닥을 내밀고 한 모금 마신다면, 라즈베리의 풍미가 느껴지는 럼주 맛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이건 놀라운 발견이다. 우리 은하 중심에는 무거운 별들이 매우 높은 밀도로 살고 있다. 이들은 짧게 살다가 수시로 초신성 폭발과 함께 사라진다. 또 계속해서 새로운 별들이 폭발적으로 탄생한다. 이들은 우리 은하 중심부에 감마선과 같은 고에너지 빛을 잔뜩 토해낸다. 실제로 우리 은하를 감마선 우주 망원경으로 관측하면, 유독 중심부에서 위아래로 둥글게 퍼져나간 감마선 거품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은하 중심부에서 어린 별들이 폭발적으로 탄생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게다가 (지금은 활동이 잠잠하지만) 우리 은하 중심에는 태양 질량 400만 배나 되는 블랙홀까지 살고 있다. 이 역시 우리 은하 중심부를 고에너지 환경으로 만든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덩치 큰 고분자는 고에너지 빛에 취약하다. 금세 더 작은 분자로 쪼개지기 쉽다. 그런데 우리 은하 중심부와 같은 극단적인 환경에서 이렇게 다양한 유기 화합물, 복잡한 분자들이 대거 검출된다는 건 이들이 정말 우주 전역에 흔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생각과 달리, 생명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사실 그리 귀한 재료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우주 어디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재료였을 수 있다.

에틸 포르메이트, 포름산 에틸은 특히 아미노산을 찾는 천문학자들에게 매우 감질 나는 발견이다. 딱 여기에서 탄소 하나만 질소 원자로 갈아끼우면 그게 바로 아미노산 중 하나인 글리신이 되기 때문이다. 비록 아미노산 자체를 발견한 건 아니지만, 포름산 에틸 수준으로 꽤 복잡한 분자가 존재한다는 건 글리신도 충분히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더 최근에는 궁수자리 B2에서 또 다른 화합물이 발견되었는데,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만져본 적이 있는 화합물이다. 바로 이소프로판올이다. 이 성분은 손 소독제나 살균제에 많이 사용된다.

거대한 전파 망원경, ALMA 덕분에 이제 천문학자들은 단일 접시 망원경 하나만으로도 궁수자리 B2를 더 넓은 시야로 관측할 수 있게 되었다. 궁수자리 B2 구름에서 새롭게 발견된 성분들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첫 번째로 아이소프로필 시아나이드인데, 이것은 지구에 떨어지는 운석에도 가끔 발견되는 성분으로, 탄소 원자들이 단순히 일직선으로 쭉 이어지지 않고 고리 형태로 연결된 대표적인 분자다. 또 요소, N-메틸폼아마이드와 같은 성분도 발견했다.

가장 최근에 검출된 프로판올은 분자량이 60g/mol을 넘는 꽤나 덩치가 큰 알코올 분자 중 하나다. 이 성분은 구성 원자는 같지만 구조만 다른 이성질체가 존재하는데, 천문학자들은 두 가지 이성질체가 모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광학 이성질체는 분자를 마치 거울에 반사시킨 것과 같다. 왼손과 오른손의 관계와 같다. 분자량도 동일하고, 화학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단지 분자의 배열 구조만 다르다. 그래서 이 둘을 구분하려면 매우 민감한 주파수 분해능이 필요하다. ALMA의 거대한 눈동자, 그리고 민감한 분광 장비 덕분에 이 놀라운 관측이 가능했다.

이성질체 분자들은 사실상 똑같은 원자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당연히 둘 모두 같은 환경과 조건에서 우연에 의해 만들어질 거라 생각할 수 있다. 궁수자리 B2 가스 구름에서 프로판올의 이성질체 두 가지가 함께 검출된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구의 생명체를 대입하면 오히려 문제가 혼란스러워진다. 우리 지구 생명체는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이성질체 중 하나만 소화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설탕, 포도당에 해당하는 글루코오스가 있다.

포도당도 거울에 비춘 것 같은 두 가지 광학 이성질체가 있다. 그 중 D-포도당은 자연에 존재한다. 우리가 먹고 소화할 수 있는 설탕이 바로 이 성분이다. 반면 그것을 반전시킨 모양의 L-포도당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 실험실에서만 만들 수 있다. 우리가 먹더라도 전혀 영양분으로 써먹지 못한다. 아미노산이 이중 나선 구조로 엮인 DNA도 마찬가지다. 우주에서 두 가지 이성질체가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는 것이라면, 왜 우리 지구 생명체들은 그 중 한쪽만 소화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걸까? 이런 편향성은 생명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성질일까? 분자 수준에서 보더라도 지구와 생명은 이해할 수 없는 매력들이 많다.

우주의 성운이 이렇게 다양하고 풍성한 알코올을 품고 있는 알코올 구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우주가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다. 밤하늘을 길게 가로질러 흐르는 은하수는 마치 술잔이 줄지어 흘러가는 거대한 포석정을 보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우리 은하는 진한 알코올 향을 내뿜으면서, 소용돌이 모양으로 빠르게 휘저어지는 거대한 술독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 술이 발효되면서 의도치 않게 한 구석에서 만들어지고 남은 술찌꺼기, 술지게미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거대한 술독 안에서 탄생한 존재라니, 우리가 알코올을 사랑하게 된 건 우주의 운명이었을지 모르겠다.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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