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대규모 유통업체 정산주기 단축을 추진하는 가운데 학계 우려가 쏟아졌다. 급격한 정산주기 단축은 유동성 압박으로 산업 위축을 초래할 뿐더러 중소 납품업체 손해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유통법학회·한국유통학회는 26일 서강대학교에서 '대규모유통업법상 대금지급기일 단축 쟁점과 과제'를 중심으로 공동 세미나를 개최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산주기 단축을 추진하는 가운데 정산주기 규제의 쟁점, 지속가능한 유통 거래 구조와 상생 전략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다.
공정위는 지난 2월 주요 유통사를 대상으로 대금지급기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정산주기 단축을 골자로 한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달 유통대리점정책과장 주재로 유통 산업 관련 7개 협회를 불러 모아 의견을 청취한 바 있다.
발제를 맡은 심재한 영남대 교수는 이같은 행보에 우려를 표했다. 심 교수는 “티몬·위메프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당 회사 경영자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지 정산기간으로 촉발된 것이 아니다”라며 “법 개정을 하는 경우 온라인 유통 사업자의 유동성이 막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심 교수는 정산주기 단축에 다른 우려사항으로 △중소 납풉업체 피해 전가 △재고 부담에 따른 대기업 제품 선호 발생 △해외 셀러로 매입처 변경 △스타트업 생태계 피해 △소비자 피해 등을 제시했다.
심 교수는 “직매입 정산주기가 현행보다 단축될 경우 유통업자 유동성은 위축될 수 밖에 없고 매입량을 대폭 줄일 것”이라며 “이는 중소 납품업체 납품량 감소와 제조업체 생산량 급감으로 직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정산 기간 설정 문제는 각 유통사업자의 경영 전략에 속한 행위”라며 “모든 유통 거래에 예외 없이 정산 기간을 단축시키는 새 규제를 도입한다면 소비자들이 누리는 혜택은 대폭 축소될 것”이라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함께 발제를 맡은 장명균 호서대 교수는 정산주기 보다는 정산 지급의 신뢰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티메프 사태는 거버넌스와 자금관리 실패, 홈플러스 사태는 구조적 현금흐름 악화, 공급망 신뢰 훼손에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서 “일괄적인 정산주기 단축 시행보다는 대상 기업의 재무 안정성과 재무 건전성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정산주기 단축에 따른 대상 기업의 재무적 충격도 분석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토론에서도 정책 추진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호택 계명대 교수는 “일괄적인 정산주기 단축보다는 업태나 규모, 거래유형, 품목마다 기준을 두고 금융 지원 등을 병행해야 할 것”이라며 “정산주기를 자발적으로 단축하는 유통사에 대한 세제 혜택, 정책적 지원도 뒷받침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자리에 참석한 김태균 공정위 유통대리점정책과장은 “유통업계 어려움과 납품업체의 고충을 균형 있게 고려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답했다.
민경하 기자 maxk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