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시간 8일 오전 9시. 지난 4일 무더기 체포 사태 이후 첫 월요일을 맞은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에 위치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의 공장 건설 현장은 대형 트럭들이 오갔다.

출근길에 만난 하청업체 소속의 마이크 김(가명)은 “미국 현지에서 계약된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은 대부분 영주권이나 시민권자여서 체포되지 않았다”며 “한국에서 온 직원 상당수가 체포되거나 귀국했지만, 일단 작업을 할 수 있는 부분은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와의 대화는 공장 관리인이 달려나와 “사유지에서 당장 나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며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수용복 차림으로 조사…“자진출국 바라고 있다”
공장에서 2시간 반가량 포크스턴 구금시설에 수용 중인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은 이날도 푸른색 수용복 차림으로 손에는 서류를 들고 줄을 서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자진출국을 위해 필요한 미 당국의 외국인 번호(A-넘버·Alien number)를 받는 절차로 추정된다.
현장을 찾은 조기중 워싱턴 총영사는 “안에 계신 분들을 다 뵙고 (전세기) 탑승에 필요한 준비를 했다”며 “다 한국에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잔류 희망자가 있는지에 대해선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부는 불법체류 혐의로 체포된 근로자 전원의 자진출국을 추진하고 있다. 불법체류 혐의를 사실상 모두 인정하고, 입국 제한 등 불이익이 발생하는 강제추방을 피하기 위한 조치다. 조 총영사는 자진출국할 경우 불이익이 없을지에 대한 질문에 “미국에 이미 있는 제도를 참고하면 된다”며 “자진출국이라 5년 입국 제한은 없다”고 답했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자진출국을 해도 불법체류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일부 근로자가 소송으로 결백을 주장하려고 할 경우 일괄 귀국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했다.
韓은 “자진출국”…美는 “법대로 추방될 것”
강제추방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 미국 측과 자진출국 형태의 석방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명과 달리 미국의 이민 정책을 총괄하는 국토안보부 크리스티 놈 장관은 ‘추방(deportation)’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이날 영국 런던에서 열린 ‘파이브 아이즈(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 정보 동맹)’ 장관회의에서 구금된 한국 근로자와 관련한 질문을 받자 “조지아에서 실시된 작전을 통해 구금된 사람들 다수에 대해 우리는 법대로 하고 있다”며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했다.
놈 장관은 이어 “그들 중 일부는 최종 퇴거명령 시한을 넘겨 미국에 있는 것 이상의 범죄 활동을 했다”며 “그들은 그 부분에 대한 책임도 지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에 대해 “모든 기업이 미국에 올 때 게임의 규칙이 뭔지 확실히 알게 한 훌륭한 기회가 됐다”고 강조했다.

놈 장관이 쓴 추방이라는 표현이 법적 용어인 강제추방을 뜻하는 지는 분명하지 않다. 만약 불법체류자들이 강제추방되면 5년 이상 미국으로의 재입국이 불가능하다. 현지 변호사들은 “규정상 거부가 5년이지만, 강제추방자는 사실상 영구 입국 거절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조현 외교장관 美 급파…‘불이익’ 문제 조율
이런 가운데 조현 외교장관은 이날 오후 워싱턴 인근 덜레스 공항을 통해 미국에 도착했다. 도착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경유 항공편을 이용했을 정도로 서두른 방미다.
조 장관은 이르면 9일 워싱턴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측 인사들을 만나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들의 석방 및 귀국 협의를 최종 매듭지을 예정이다. 자진출국 이후 한국 근로자들이 미국 재입국 제한 등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문제도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조 장관은 특히 이번 사태를 통해 제기된 한국인 전문직 비자 신설 방안에 대해선 구체적인 요청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날 소셜미디어(SNS)에 대미 투자 외국기업의 미국 이민법 존중 필요성을 언급하며 해당 기업들이 인재를 합법적으로 미국에 데려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근로자들의 자진출국 절차가 마무리될 경우 근로자들의 현지시간 10일 늦은 오후 구금시설에서 4시간 반가량 떨어진 애틀랜타 공항에서 전세기편으로 귀국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세기 왕복 운항에 드는 비용 10억원은 LG에너지솔루션 측에서 부담할 예정이다.
“이민자·투자 유치 정책의 우발적 충돌”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한국인 근로자의 구금 사태가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역점 사업이 제대로 조율되지 못해서 발생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정책인 ‘불법 이민자 추방’과 ‘투자 유치’ 정책이 현장에서 예기치 못한 충돌을 빚었다는 뜻이다.

더힐은 “정책 전문가들은 트럼프 정부가 자기 목표에 스스로 걸려 넘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처음부터 상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던 두 개의 별도 정책이 조율되지 못해 발생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더힐에 “미국 제조업을 부흥시키고 미국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할 외국 투자자들을 유치하며 공장을 설립할 노동자들을 들이는 절차도 마련해주는 문제에 대처할 방안에 대해 조율이라는 게 아예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더힐은 이어 한국은 미국과의 관세협상 결과로 3500억달러(약 487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약속했지만, 이번 단속으로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