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산업사회는 빠르게 발전하면서 전자파 활용 분야가 전통적인 정보통신과 국방을 넘어 항공·우주, 보안·안전, 교통·물류, 환경·의료, 측지·원격탐사 등 다양한 산업 및 자연과학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자파 기반 정보통신 기술이 다른 분야의 첨단기술과 융합되면서 인간의 생활 방식, 업무 환경, 사회적 관계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전자파 기기의 확산이 있다. 오늘날 전자파 기기는 다양한 산업 영역과 일상생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기 간의 상호 간섭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동작을 보장하기 위해 기기 사양은 점차 엄격해지고 있다.
특히 고주파수, 광대역, 고출력 신호를 다루는 전자파 기기들이 상온 및 대기압의 일반 환경뿐만 아니라 고온·저온, 고압·진공과 같은 극한 환경에서 사용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전자파 재료의 물성은 주파수, 온도, 압력 등의 물리적 환경조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일반 환경뿐만 아니라 극한 환경에서의 정확한 재료 물성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은 고신뢰·고성능 전자파 기기 개발의 필수조건이다.
일례로 5G·6G 통신기기에서는 상온에서 수십 도까지의 온도 범위에서 저유전율·저손실 유전체의 물성 데이터가 필요하고, 양자컴퓨터 분야에서는 극저온 및 진공 환경에서의 재료 물성 데이터가 필요하다. 고속 비행체의 경우에는 공기와의 마찰로 인해 수백 도 고온까지의 세라믹 재료 물성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물성 데이터를 확보하는 방법으로는 기존 개발된 데이터를 활용해 확보하는 '간접생산' 방식과 개발된 데이터가 없거나 확보가 어려운 경우 재료의 물성을 실제 환경 조건에서 직접 측정하여 확보하는 '직접생산' 방식이 있다. 범용 전자파 재료의 경우 일반 환경에서는 간접생산 방식이 유효하지만 극한 환경에서는 개발된 데이터 확보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직접생산 방식이 필수적이다.
특히 첨단 전자파 재료는 군사·항공·우주 등 전략 분야와 관련된 경우가 많아, 물성 정보가 공개되지 않거나 제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전자파 재료가 실제 사용될 환경 조건에서 직접 물성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과 시스템을 선행 개발해 신뢰성과 정확성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직접생산이 유일한 방법이다.
현재 국내 산학연에서도 극한 환경에서의 전자파 재료 물성 데이터 확보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나, 수요가 당장 크지 않다는 이유로 자체 연구재원 투자에는 소극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극한환경 재료 물성 데이터는 공공성과 파급효과가 매우 크며, 전자파 관련 소재·부품·장비의 자립화, 기술 선점, 수입 대체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전략적 가치가 크다.
신뢰성과 정확성 있는 전자파 재료의 물성 데이터를 확보한다면, 일반 환경뿐만 아니라 극한 환경에서도 원하는 고신뢰·고성능의 전자파 기기를 시행착오 없이 단기간에 설계, 개발할 수 있다. 이는 연구개발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은 물론 핵심 기술의 조기 확보에도 기여할 수 있다.
나아가 다양한 전자파 재료의 물성을 주파수, 온도, 압력 조건 별로 체계화하여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한다면, 산학연이 공동으로 활용 가능한 전자파 재료 물성 데이터 인프라로 발전할 수 있으며, 향후 전자파 디지털 트윈 구현의 핵심 입력 데이터로도 활용될 수 있다.
정보통신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 미래 첨단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자파 재료의 물성 데이터 직접생산 및 확보 역량과 이를 기반으로 한 기술 자립이 필수적이다.
이는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는 시간과 비용 투자가 요구되는 공공 연구개발 영역으로 국가 차원의 체계적 대응과 전략적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정부와 민간의 협력으로 향후 전자파 재료 물성 데이터 개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강진섭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한국전자파학회 명예회장 jinskang8300@gmail.com